아무리 바빠도 챙길 것은 챙기는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학사 식당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러 가자고 서둘러 복도로 나왔는데 남편이 묻는다.

"당신 우산 챙겼어요? 비온다는데~"

"아니. 그냥 오셔."

"안돼. 비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우산 챙겨야 돼요."

엘레베이터가 도착하여 잠시 머물다 문이 닫힌다.


"빨리 와. 엘레베이터 닫혀~"

"응. 알았어요."

아무도 누르지 않았나 보다. 멈춰선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니 다시 열리고 남편은 달려 나오고. 한마디 보탠다.


"에그, 왜 이렇게 뜸을 들여~"

"이 사람아. 당신 우산 챙길려고 늦었지."

"내가 5분 대기조도 아니고. 예정 스캐줄이라는 게 있지....."

"내가 늦으면 그냥 보내요. 다음에 타면 되지. 뭐가 급하다고."

"안 챙겨도 되는데. 기다리게 하니까 그렇지."

"엘레베이터는 나중에 타도 되지만 우산을 안 챙기면 비 맞잖아요."


"맨날 당신은 느려~"

"뭐? 느리다고? 이런게 뭔지 알아? 적.반.하.장. 나참 어이가 없네. 누구때문에 늦었는데."

'누군 누구야~ 결론은 나를 챙기느라 늦었지.'

깨갱~ 할말이 없네. 틀린 말은 아니라서 팔짱을 꼈더니 거부하는 남편.


"여봉~ 왜애~ 화났어?"

"화 안났거든요."

또 팔짱을 꼈더니 거부를

"저리 비켜요. 더워."

참 재밌다. 이런 때 시크한 남편이 너무 귀엽다. 나혼자 깔깔깔~


"아잉~ 오후에 뭐 할거야. 나 홈플러스 가면~"

줄줄이 꿰는데 내가 원하는 답이 없다.

"그려~ 당신 바쁘네. 근데 나 데리러 온다는 말은 없네. 나 버스타고 와?"

"아참. 내가 깜빡했네. 당신이 일 번인데. 당연히 모시러 가야지."

"서운하네. 다른 일은 다 하면서 나 데리러 오는 건 깜빡하고."

"아니, 당연한 걸 물으니까 그렇지."


말도 안되는 어거지 소리를 하면서 학사 식당에 도착. 맛있게 먹고 일어서려는데 남편은 어설프게 주머니를 뒤적뒤적~

"아이구~ 내가 카드를 집에 놓고 왔네."

"카드? 밥값 냈잖아."

"아니 당신 쇼핑하러 간 김에 맘에 드는 옷이 있으면 사라고 줄려고 했죠."

"안 사. 안 사도 돼."

"좀 괜찮은 거 있으면 사 입어요. 얼마든지. 내가 줄테니까요."

"알았어."


대충 대답하고 버스 정거장으로 갔다. 절묘하게 내가 타야 할 두 대의 버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류장에 잠시 멈췄다가 손님을 태웠는지 궁딩이만 보이고 가버린다.

"아구~ 저거 두 대 다 가네. 에이~ 좀 빨리 나올 걸~"

"괜찮아요. 다음 정거장까지 걸어 가요. 밥먹었으니까 운동해야죠."

여전히 나를 운동시키려 하는 남편이닷.


쿨하게 걷다가 카페를 지날 무렵 덥다는 생각에 아이스라떼가 갑자기 그립다.

"여보, 노브랜드 아이스라떼가 맛이 좋고 시원하고 값도 싼데 그거 마시고 싶어."

"그래요? 그럼 당신 버스 또 놓치잖아."

"아니 괜찮아. 충분해. 놓치면 다음 정거장까지 또 걸어가면 되고."


노브랜드에 가 아이스라떼를 사들고 둘이 나눠 마시면서 다음 정거장으로. 햐~ 절묘하게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온다. 이럴 때 기분은 삼삼~

"거봐. 딱 맞잖아~"

"그래요. 잘 다녀와요~ 전화하고~"


남편과 바이~ 인사하고 홈플러스에 갔다. 1층 브랜드 옷 매장에 갔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2층 캐쥬얼복 코너에 가서 티셔츠를 봤다. 옷 살 마음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


발걸음을 마트로 옮겼다. 핸드폰에 써온 것과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담았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싶으면 카트에 담았다. 뭔가 사야겠다고 생각 해둔 것이 있는데 기억에서 멀어진 것은 패스닷.


장보기를 마치고 전화을 했더니 결재 문자를 본 남편은 이미 주차장에 왔다고 한다. 곧 나한테 쌩하니 달려 온다고. 후훗~ 역시 내편~!!!


몇 년 만에 만나는 사람마냥 나를 보자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다가오는 남편이닷. 예전 같으면 챙피해서 다른데 쳐다 볼 텐데 이젠 챙피고 뭐고 없다. 같이 춤추면 멈출 테니까.


홈플러스에서 나오는데 비가 온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르게 억수로 퍼붓는다.

비가 내리든 말든 내 기분은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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