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 더하기 봉숭아꽃 물들이기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산책하고 집으로 오는 길.


봉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니 손톱에 물들이고 싶어졌다. 땅에 떨어져 있는 꽃송이를 주웠다. 양이 적을 것 같아 줄기에 달린 꽃잎 몇 장을 땄다. 보기에도 아까운 꽃과 잎새 석 장을 땄더니 미안한 마음.


집에 와 접시에 놓았더니 시들시들하다. 봉숭아 꽃과 잎새, 명반을 넣어 콩콩콩콩~ 남편과 나의 손톱에서 다시 피어나게 해주려고 정성껏 찧었다.


밤 10시 10분쯤 작은 도서관에서 알바를 마친 남편이 들어온다.


"뭐해요?"

"응, 봉숭아 물 들이려고."

"또 나도 해줄라꼬?"

"당연하지. 같이 해야지. 당신이랑 나랑 똑같이 물들여야지. 커플티는 안 입어도 커플로 봉숭아 물들이기는 해야지."


퇴직하기 바로 전의 일이다. 남편한테 봉숭아 물을 들여주고 싶어졌다.


"여보, 내가 당신 봉숭아 물들여 줄라꼬."

"뭐? 뭐라고요?"

긴가민가 잘못 들었나 싶은지 재차 묻는 남편.


"봉숭아 물들여 준다꼬."

"싫어요. 안 해요. 누가 남자가 그런 걸 해요."

"당신. 당신이 하지. 누가 해."

"안 한다니까요. 당신이나 하구료."

"일루와~ 같이 하게."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편.


"여봇~ 일루 와보라니까. 얼른."

마지못해 다가온 남편은 손을 뒤로 숨긴다.


"내가 도와 줄게요. 당신만 하구료. 어떻게 해주면 돼요?"

"안돼. 같이 해야 돼."

"난 안 한다니까요. 남들이 흉봐요."

"흉을 왜 봐. 부러우면 자기들도 물들이면 되지."


손사래 치며 방으로 되돌아가는 남편을 붙잡으려 뒤쫓아 갔다. 기겁하며 손을 뒤로 숨기며 방방마다 옮겨 다니며 달아난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손 내놔. 물들이게."

"그런 건 여자나 하는 거죠. 누가 남자가 그런 걸 해요. 나 안 해요. 당신이나 해요."

"이걸 여자만 하는 거라고 어디 써있어? 당신 봤어?"

"아뇨. 못 봤어요."

"그럼 손 내놓으슈~"


거절하던 남편은 그때 손에 봉숭아 물을 들여 주었더니 다음부턴 고분고분 손을 내민다. 일단 안 한다고 빼기를 하고 봉숭아를 찧어 대령하면 손가락을 내밀어 더하기 한다.


찧은 봉숭아를 남편의 못생긴 우렁 손톱 위에 올렸다. 적당하게 자른 비닐팩으로 손가락을 감싸고 실로 돌돌 묶어주었다. 그걸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는 남편이 귀엽다. 이불에 봉숭아 물이 들까 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잤다.


손톱에 물들이고 자는 밤은 은근 길고 길다는 사실. 자다가 깨어 손을 확인하고 또 자다가 깨어 손을 확인하느라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만 일어나자마자 손톱에 물이 어떻게 들었는지 설레는 시간. 약간의 김이 서린 비닐장갑을 뺀 후 실을 풀고 비닐팩을 봉숭아꽃과 함께 주욱 잡아 빼면..... 손톱과 주변의 피부가 다홍색으로 꽃물이 곱게 들어 안착~


이쁘다. 고옵다. 자연이 주는 색이 참 아름답다. 마음까지 물들인다. 주홍빛으로~


처음엔 누가 볼까 창피해서 남편은 주먹을 쥐고 다녔다고. 아무리 주먹을 쥐고 다녀도 일하다 보면 손을 펼 일이 생겨 결국은 들켰다고. 아내가 해주었다고 말하면서도 기분 좋았다고. 다음부턴 당당하게 다녔다고 했다.


그럴 걸 왜 빼기를 해. 그냥 더하기 하지. 늘 그런다. 남편은~


이제는 고분고분 더하기 해서 이쁘다. 즐기는 모습이 귀엽다. 정말 정말 못생긴 손톱이 앙증맞다. 남편과 나 둘이서 손가락을 쫙 펼쳐본다. 누가 더 곱게 물들었는지.....


비교하며 번갈아 보는 나. 남편은 꽃물이 들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 똑같이 물들였다는 것으로 만족.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을 일이 아닌데도 아침부터 웃어대는 우린 바보. 바보들의 행진~


그.래.도. 웃는다.


함께여서 감사.

함께여서 행복.

함께여서 기쁨.


그래서 웃음이 나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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