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인 줄 알았는데 조수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월요일이면 오병이어 학사 식당의 식단을 검색하는 남편. 학사 식당에서 매일 점심 먹게 해서 미안하단다. 갑자기? 오늘은 내가 안 좋아하는 메뉴라면서 점심 이벤트를 하겠노라고.


이웃님이 소개한 음식점을 예약했다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도마동에 있는 '회랑'으로 부릉부릉~ 네비 양 안내를 받으면서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눈을 감고 휴식하는 나. 아니, 네비 양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잤다.


"여보, 다 왔어요."


근데 주차장이 없다. 알아서 주차해야 하는 골목이닷.


"여보, 내려서 봐줄래요. 주차가 어렵네."


조용히 내려 승용차 꽁무니로 간 나.


"앞으로 더 가도 돼. 더더더..... 됐쓰."

"당신 덕분에 잘 했네. 고마워요. 들어갑시다."


룰루랄라~ 음식점 앞에는 식물이 즐비하게 반긴다. 안으로 들어가니 옛날 물건과 명언을 붓글씨로 쓴 한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약간 심란 그 자체.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어요?"

"네~ 예약했습니다. 어디 앉을까요?"


씩씩하게 대답하고 예약 자리에 앉은 우리 둘~


식사 메뉴는 남편이 좋아하는 청국장이닷. 건강에 좋은 거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편이 예약한 메뉴. 남편이 산다고 해서 군말 없이 무조건 콜~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체되어 나온 음식을 보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상. 와우~ 대접받는 기분이 요런 건가~ 쭈욱 둘러보니 남편이 좋아하는 고기와 생선은 빠졌다.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야채 메뉴들이 가득. 황홀한 밥상을 받고 맛있게 냠냠 쩝쩝.


"여기 음식이 정갈하니 참 맛있네요. 근데 고기나 생선 중에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게 좀 아쉽네."

"여기 생선 있는데? 멸치."

"에이, 이게 무슨 생선이에요."

"여기도 있잖아~ 오징어 젓갈에 들어있는 오징어."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는 남편.


"됐슈. 맛있게 드슈~"


내가 좋아하는 호박잎 찜과 고구마 줄기 볶음이 있고 두릅도 있다. 완전 집 반찬. 김도 직접 구운 듯 맛을 보니 옛 생각이 나는 맛. 연탄불에 굽지는 않았겠지만 흡사 연탄불 맛이 났다.


청국장과 함께 먹으니 건강한 맛이닷. 밥을 다 먹을 무렵 숭늉으로 내온 누룽지까지.....


그.래.서.

백반기행 허영만 선생님께서 다녀가셨나 보다.

사진이 걸려 빛을 발한다.

백반기행 책도 앞에 놓여 있다.

집밥 같은 음식으로 승부하는 주인장의 자신만만함이 느껴지는 회랑~


남편이 사기로 했으니 결재를 하도록 기회를 주고 밖으로 나왔다. 동네 골목에 차들이 얼기설기 주차를 한 모습에 살짝 긴장한 남편.


"여보, 뒤 좀 봐줘요. 차 빼기 어렵겠는데....."


승용차에 타 뒤로 후진하는 남편은 불안한지 뒤로 빼라는 내 말을 못 믿는다. 더 빼도 되는지 의문을 갖는 남편~ 차 궁둥이는 실실실 주저주저하면서 나온다. 됐다고 차에 타란다.


근데 이게 웬걸~ 동네 골목이라 일 차선인데 앞에서 들어오는 승용차.


"어, 차가 들어오면 어떡해. 어떻게 나가지."


당황한 남편은 그대로 멈춰 기다린다. 상황 파악이 살짝 되는 나는


"여보, 그냥 앞으로 가~ 저기 주차장 보이네. 병원 주차장 비어 있으니까 당신이 들어가. 그럼 저 차 보낼 수 있어. 당신도 나갈 수 있고."


쭈뼛쭈뼛~ 삐질삐질~


병원 주차장을 뒤늦게 발견한 남편. 우리 차를 뒤따라 들어오는 자동차.


"여보, 당신이 조금 더 앞으로 가. 뒤차까지 들어가야 저 차들을 보낼 수 있겠어."


내 말을 듣고 앞으로 쑥 들어간 승용차 두 대. 우리 차와 뒤차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자 맞은편 두 대의 승용차가 지나간다. 주차장으로 피했던 뒤차와 남편의 차가 후진으로 나왔다.


"여보. 차 들어오기 전에 빨리 나가슈~"

"에이~ 다음에는 이 집 못 오겠네. 주차장이 없어서."

"안 오면 되지."


남편은 반가운 목소리로~


"그려? 안 와도 돼요? 오늘 이 집 땡~"


큰 길로 들어서자 안심되는 듯


"당신 오늘 너무 멋있어요. 뒤로 뒤로 뒤로. 빼 빼 빼 앞으로 앞으로~ 스톱."


내가 한 말을 남편은 장난스럽게 따라 한다.


"병원 주차장이 비어 있는 걸 보고 그리로 들어가라고 해서 차를 보내고 우리도 빠져나오고. 운전도 못하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운전은 못해도 본 게 있어서 상황 파악은 하거든~"

"아~ 오늘 당신 맘에 들어. 조수는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나 오늘 조수 된 겨?"

"그렇지. 옆에 앉으면 조수 노릇 잘 해야 되는 겨."


대접받은 왕비인 줄 알았더니 남편과 함께 앉으면 난 조수인가 벼~


왕비든 조수든 기분 좋은 나~ 함께라서 무조건 행복.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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