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양산을 거리낌없이 쓰는

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by 그님


우리 아파트 뒤에 있는 야트막한 옥녀봉이 있다. 맨발 걷기 한다고 배낭 메고 나가는 남편. 11시에 오병이어 학사 식당 앞에서 만나 점심 먹자고 약속했다. 컴퓨터 앞에서 깨작 깨작 타자치다 약속 시간 되어 나갔다.


오병이어 앞에서 만난 남편과 점심 먹고 산책길. 햇빛을 차단하려 선크림에 챙 모자를 쓴 나는 기분 좋게 룰루랄라~

남편은 덥다며 배낭을 뒤적이며 뭔가를 꺼낸다. 꽃무늬 자글자글한 양산을 꺼냈다. 오잉~ 꺄악~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 이거 현실이야? 믿기 힘든 눈앞의 광경에 놀람 반 화남 반.


설마 내 양산이 맞는지 눈을 씻고 봐도 내 것이다. 그것도 친정아버지 제자가 엄마랑 나랑 둘이 똑같이 선물받은 양산이닷. 가볍고 우산 겸 양산으로 사용할 수 있게 방수 된 꽃무늬 양산.


보자마자 기겁하는 나. 남편이 쓸 줄이야~ 절대 생각하지 못했던 일.


"뭐야? 이거 내 양산인데~"

"맞아요. 왜? 이거 쓰면 안 돼요?"

"안되지. 이거 내 건데~ 엄마랑 나랑 똑같이 받은 선물인데. 나도 아끼느라 잘 안 쓰는 건데....."

"그래요? 아끼긴 왜 아껴. 당신이 안 써서 내가 쓰는 건데요."

"의미 있는 양산이니까 잘 안 쓰지. 아끼느라~ 당신이 이걸 왜 써~"

"이거 가벼워서 너무 좋아요. 딱 좋더라구요."


에구~ 눈치 없는 남편은 내 말에 또박또박 거리낌 없이 대답한다.


"아니. 이거 꽃무늬 있는데~ 남자가 이걸 써?"

"어뗘~ 꽃무늬가 있거나 말거나 햇빛만 가리면 되죠."


말로는 안되겠다 싶은 나.


"아후~ 이거 망가지면 어떡해?"

"왜 망가져요. 내가 이렇게 잘 쓰고 있는데~"


걸으면서 그늘에서는 양산을 껐다가 해가 비취는 곳에서 다시 양산을 활짝 펼쳐 들고 흐뭇하게 웃는 남편. 내 속은 타들어 가는데.....


"아니 그러니까 그렇게 접었다 폈다 하면 금방 망가진다고."

"왜 망가져요. 내가 요렇게 살살 잘 사용하는 데에~"


살살이라고~ 안돼애~ 남편의 손에서 살살이란 없다. 뭐든 손에 잡으면 망가지기 일쑤니까.


내내 우산을 잘 쓰고 다니다가 왜 갑자기 내 양산에 욕심을 냈는지 알 수가 없다. 살살 잘 쓸 거란 말은 계속 양산을 쓴다는 말로 들렸다. 더욱 강력하게.


"이거 내꺼라니까. 아끼는 거라고. 선물 받은 거라고오~"

"그려? 알았어요. 다음부턴 안 쓸게. 안 쓰면 되잖아요. 신랑이 좀 썼다고 그럴 수 있어요? 내참 내일부터 우산 쓰고 나와야지 참내~"


남편도 나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반박한다.


"그럼 햇빛 가리는 가벼운 양산 사줘요. 내 껄로."

"알았어. 작년에 내가 사준 챙 모자는 왜 안 쓰고 갑자기 양산, 우산 타령이야~ 올해 모자 잃어버려서 두 개나 사줬잖아~"

"우산 쓰니까 모자보다 햇빛이 더 많이 가려지더라구요. 팔도 가려지고 목뒤도 다 가려지고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내 양산을 쓰는 건 아니지. 당신이 망가뜨릴까 봐 겁나."

"에잇 참 안 망가뜨린다니까~ 이제 안 써. 됐슈? 내일 당장 다이소 가서 양산 사야지 안되겠어."

"다이소? 거기 양산 파나? 팔아도 다이소 양산은 무거울걸~ 싸서."


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남편. 아니 너무 순진한 남편. 여성 호르몬이 팍팍 나오나 보다. 꽃무늬 양산도 상관없이 쓰는 걸 보니. 예전 같으면 '남자가 이런 걸 어떻게 쓰냐'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산책하는 내내 양산 펼치고 접을 때마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하니 콩알만 해진다. 제발 고장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의 마음을 남편은 알까~


남편의 양산 쓴 뒷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웃음만 나오는 건 뭔지. 귀여운 남편이닷.


인터넷으로 당장 남자 양산(?)을 주문해야 할 듯.


(여름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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