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늘 있는 일이지만 어제도 하루 종일 컴퓨터를 켜놓고 앉아 블로그 했다. 가끔 일어나 집안일을 하면서. 컴퓨터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 전원 모드가 된다.
낮에 블로그 글을 읽고 댓글쓰고 또 내 글을 썼다. 저녁에 헬스장 다녀와서 샤워 후 친정에 가져갈 음식을 해놓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은 나.
'자 이제부터 내 시간. 이제 글을 써볼까~'
재부팅하려 전원을 누르고 눌러도 대답 없는 너. 컴퓨터.
'어. 이게 웬일이야. 무슨 일이지. 혹시 고장?'
제아무리 누르고 눌러도 꼼짝하지 않고 버티는 컴퓨터.
누가 이기나 보자며 컴퓨터를 살려보려 노력해도 절대로 반응 없는 너. 앞이 깜깜해지는 나. 갑자기 확~ 열이 오르고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땐 생각을 다른 곳으로 집중하는 일이 젤 좋은 일이다 싶어 서울에 사는 동서에게 전화했다. 이러쿵저러쿵~ 쿵짝이 제대로~ 미주알고주알~ 한 시간 이상 통화를 한 후 다음에 보자고 빠이빠이~
10시 10분쯤 작은 도서관에서 퇴근해온 남편이 현관문의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자 하소연하는 나.
"여보, 컴퓨터가 안돼. 나 오늘 글도 못썼는데."
"그려? 잘 됐네요. 맨날 블로그 한다고 붙어 있더니. 아이 신나~"
"에이~ 난 지금 열나는데."
"당신 쉬라고 컴퓨터가 안 되나 봐요."
조금 전에 신난다고 약 올리던 남편은 온데간데없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이닷.
"본체 수명이 다 됐나 봐. 사야 할 것 같아."
"내가 해보지 뭐. 진짜 되나 안 되나. 확인해 보고 사든지 말든지 해야죠."
그렇지. 내 손뿐 아니라 남편 손도 거쳐 확인을 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안되는 걸 남편이 누른다고 되진 않는다는 사실.
"어, 정말 안되네요. 어쨌든 밤이 늦었으니까 자고 내일 다시 해봐야겠어요."
"나 오늘 글도 못 썼는데. 어쩌지? 이거 고치면 글 쓰고 자려고 했는데."
"하루 안 써도 돼요. 컴퓨터 고치고 내일 쓰면 되죠. 약속한 것도 아닌데."
"나랑 약속했어. 매일 글쓰기로."
"됐어요. 내일 내가 고치든 수리하는 사람을 부르든지 해야겠어요. 자 오늘은 그만 쉬어요."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 뒤척 뒤척~ 걱정 반, 한숨 반..... 머리가 아플까 말까 하는데 잠이 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나를 취조한다. 어떻게 해서 컴퓨터가 안되었는지. 모니터가 안 켜지는 건지... 본체의 전원이 안 들어오는 건지... 성실하게 대답하자 나의 말을 듣고 공대 나온 아들에게 SOS 카톡 하는 남편. 아들에게 바로 답문자가 왔다.
남편은 컴퓨터 책상을 앞으로 끌어당겨 모든 선을 뺐다가 다시 끼운다. 땀을 삐질삐질 내면서. 책상을 다시 원위치로 옮기자 내 마음은 두근두근~ 전원 버튼을 누르자 삐약 소리를 내면서..... 모니터가 켜진다. 환호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여보, 당신 똥 손 취소. 당신 X 손 아니야. 이제."
"뭐얼~ X 손 맞지 뭘. 어쩌다 된 것 가지고 쑥스럽게. 아들이 보낸 문자대로 한번 해본 거요. 잘 됐으니 다행이네. 어뗘? 기분 좋아요?"
"당연히 기분 좋지. 심난했는데."
"그럼 나한테 뭐 없어요?"
있지. 당연히 있지. 달려가서 뽀뽀 쪽. 끌어안고 토닥토닥했다. 활짝 웃음 웃는 남편이 귀엽다.
"다음에 또 고장 나면 말하슈. 김 가이버가 다 고쳐줄게요."
엥~ 고쳤다기 보다 코드를 뺐다 다시 끼 것뿐인데 김 가이버로 등극?
"뭘 김 가이버야? 어쩌다 잘 된 거지. 아들이 하라는 대로 했잖아."
"당신이 이걸 하라면 하겠어요? 내가 하지 않았으면 당신 컴퓨터 못했을 거잖아요."
"못하지. 무서워서 어떻게 해. 암튼 고마워. 당신 덕분이야."
평상시 고치는 물건마다 고장 내는 남편의 손이었다. 모처럼 손대서 모니터가 켜지니 으쓱한 모양이닷.
"그쵸? 당신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내가 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서 고친 거예요."
겸손을 포기하고 예쁜 말을 남발하는 남편. 어쩌다 운 좋게 잘 고쳤다는 썰~
어쨌든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