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콩달콩 퇴직 후 부부 이야기
날씨 끄물끄물하니 구름이 잔뜩 찡그리고 있어도 우린 날씨 탓하지 않고 김천 직지사 가기로~
눈이 안 좋으면 자연과 벗하는 게 좋다는 남편.
약이 좋긴 하지만 자연치료가 더 좋다는 남편.
나의 눈을 핑계 삼아 라떼 사들고 김천을 향하여~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일 듯 말 듯 수줍어 달아나는 해님. 하얀 구름도 아닌 옅은 회색빛 구름을 데리고 김천으로 달려 달려라~ 우리의 애마 소나타~
1시간 30분 만에 직지사 근처 가장 먼저 보이는 주차장에 주차했다. 10시가 갓 넘은 시간인데 점심을 먹자는 남편. 배가 든든해야 구경하는 게 여유가 있고 즐겁다며 일명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생각이 없는 나. 남편이 가자고 하면 졸졸 따라가는 나.
김천인데 김천 식당이 아닌 대구 식당으로 입성. 산채 한정식으로 콜~ 음식들이 정갈하게 줄줄이 나오는 바람에 눈이 동그래지고..... 이걸 다 어떻게 먹지 싶은 마음이 들지만 먹는다.
우리 집엔 돼지가 있다. 반찬 남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입장에서 그저 놀랐을 뿐 남편 입장에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음식이 짜지 않고 먹을 만해서 다행. 칭찬을 곁들여 드시는 남편.
내 밥을 3분의 1을 덜어주고도 소 불고기, 돼지 불고기는 남편이 다 먹었다는 썰. 맛있다고 냠냠 쩝쩝. 돼지가 뭔들 맛없겠냐마는. 아침을 7시 30분경에 먹었는데 10시경에 점심이라니.....
"아~ 맛있게 잘 먹었다."
"난 너무 배부른데 어떻게 걸어 다니지~"
"배가 든든해서 너무 기분 좋네요."
"당신 운전하느라 고생하셨으니 점심은 내가 살게."
함박 미소에 입이 찢어질 듯 귀까지 올라 간 남편.
"잘 먹었습니다. 그님씨."
식당 주인이 문밖까지 나와 친절하게 직지사로 가는 길을 알려주어 걷는 길.
걷고 걸어도 끝없이 이어진 길~
그럼 그렇지.
나를 위해서 직지사 근처에 주차했다는데... 남편의 말은 공수표가 되어 날아가고. 여지없이 가장 먼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는 썰.
건강을 위해서 걷는 게 좋다는 둥~ 밥을 먹었으니 운동해야 한다는 둥~ 가다 보면 볼 게 많다는 둥~ 꽃무릇을 보려면 여기서부터 걸어야 본다는 둥~
남편의 말은 허공에서 둥둥 떠다녔다.
어디에 꽃무릇이 피어 있는지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다. 노점 상인에게 물어보니 꽃무릇은 2주 전에 왔어야 볼 수 있었다고. 지금은 거의 져서 보기 어렵다고. 이런 이런~
꽃무릇을 보여줄 요량으로 나를 데리고 온 남편은 난처한 표정이다.
"작년에 수운교에서 봤잖아요. 직지사는 내년에 다시 와야겠네. 9월 중순에~ 대전은 듬성듬성 있었는데....."
걷다 보니 직지사로 가는 길이 꽃무릇 천지였었다. 말라 지친 꽃무릇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다. 늦게 핀 꽃무릇은 우릴 반기지만 고약한 X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를 본 남편은 기겁한다.
"당신 은행 밟으면 큰일 나요. 땅 보고 걷구료. 밟지 않게. 은행 밟으면 당신 차 안 태워 줄 거야. 알아서 하시구료."
청개구리 심보를 마음 깊숙이에서 들어 올린 나~
"그려? 그럼 은행을 더 밟아야겠네."
"뭐라고? 차 안 태워준다고 했슈~"
꽃무릇 대신 은행 열매가 바닥에 황금똥이 되어 있었다.
사명대사 공원을 산책하며 맨 위에 있는 아로마 체험실에서 발 마사지를 계획했던 남편. 점심시간이라며 1시에 오라고..... 계획은 계획일 뿐 실행은 할 수 없어 아쉬웠다는~
남들은 전통 관람 차인 『해피카』를 타고 편하게 돌아보는데 우린 옆에 있는 직지사로 터벅터벅 걸어서 직행.
대웅전과 사찰을 둘러보고 역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꽃. 꽃이닷. 핸드폰을 들이대고 찍고 또 찍고. 꽃에 벌이 날아든 것을 본 것만으로도 다행.
내려오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음악 분수와 조각 공원. 올라갈 때는 왜 못 보았는지 아이러니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 길을 피해서 오로지 꽃무릇을 보기 위해 남편이 안내하는 대로 걸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목적은 사명대사 공원과 직지사 관람.
남편은 30년 전에 보고 오랜만에 왔는데 마치 얼마 전에 다녀간 사람처럼 안내를 했다는 어이없는 현실.
남편이 가는 길은 믿고 인정하고 잘 따라가는 나. 결국은 꽝~ 이었다. 남편의 말을 믿고 따라가면 멀리서부터 걸어야 한다. 알면서도 속았다는 느낌.
우린 둘 다 똑 닮아간다는 사실을 오늘도 확인 사살~ 으윽~
그래. 인정~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걸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대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황간의 월류봉까지 데려가 준 남편. 눈과 마음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게 된 하루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