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함 없이 생존한 우리일지라도

항상 너의 행복을 빌어.

by 다섯개의 가위



마음 편히 웃지 못했던 너를 기억한다.


나는 태생부터 참으로 예민한 아이였어서 너의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고 늘 애먼 고민을 했었다. 또한 나의 보잘 것 없는 감정들은 파편처럼 흩어져도 매번 그러모으면 죄책감의 형태를 지니곤 해서, 너 또한 나에겐 죄의 형태로 자리잡았었다.


그런 죄를 갚을 기회라도 주듯, 다 자란 몸으로 너를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저 반갑기 보다 왜인지 연신 미안함을 고하고 싶었다.


잘 지냈니. 이 가벼운 인사조차도 우리에겐 사치 같았다.


나의 망가진 왼팔에 대해 너는 기다려주었다. 너는 내가 없었던 사이에 배려심이 지나치게 깊은 사람으로 자라있었고, 나는 그 부분이 마음 아팠다.


네가 가장 고통스러울 시기에 나를 다시 만난 건 행운일까? 나는 그 부분에 확답할 수 없었고, 그 사실이 나를 절망스럽게 했. 과연 지난 시절에도 내가 네게 좋은 친구로서 남을 수 있었을까?너의 표현처럼, 내가 가까이 있었더라면 너는 조금이라도 더 나았을까? 스스로 단언할 수 있는 부분은, 결국 나는 너의 곁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럼에도 빛나는 너의 용기로 우리는 다시 인사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처럼 먼저 다가오는 건 늘 너구나.


그런 네가 늘 행복하길 빌었는데. 무엇 하나라도 네가 행복하길 바랐는데. 이런 나의 바람이 무색할 만큼 너는 몹시도 힘겨워 보였다. 그런데 너에게 있어 나도 그렇게 비춰졌던 모양인지, 마음 편히 웃지 못했던 너를 기억한다.


한동안 나는 네게 온 신경을 쏟았다. 마치 네 곁에 있어주지 못한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나의 변변찮은 관심과 노력이 얼마큼의 의미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마냥 고맙다고 표현하는 네게 나는 여전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느 날 너는 나를 찾았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너는 나에게 두 번은 못 견딘다고 말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너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미처 다 울지 못했던 나는 네 앞에 변명조차 꺼내지 못하고 울 뿐이었다. 너에게 나 또한 그런 잔인한 인간으로 남을까 봐 두려워서 떠났던 것이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마주하고 마는구나. 그 죗값을 기어코 이런 무게로 받게 되는구나. 오만가지 뒤엉킨 감정 속에서 언제나 분명했던 죄책감. 그래서 무너지듯 울었었다.


너의 몇 안 되는 부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크게 흔들리곤 했다. 내게 주어진 삶의 형태와 내가 만들어낸 삶의 형태가 온통 가시로 돋은 것 뿐이어서 나는 계속 어리석은 피를 흘렸다. 고통이 뒤섞인 불안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네게 들킬까 그마저 두려웠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나는. 자신조차 몰랐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살아남았다. 이 역시 주어진 삶의 형태와 만들어낸 삶의 형태의 산물이었다. 그 형태 안에 감사한 너 또한 존재했으며, 견고해진 나 또한 존재했다. 보다 나아진 하루를 맞이하듯, 간밤에 비명을 지르지 않으며 깨어나는 나의 수면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분명하게 충실하고 있음을.


그리고 이 또한 감사하게도, 너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나로서는 그 기회가 네 삶의 형태를 지금보다 더 둥글게 빚어주길 바랄 뿐이다. 네가 너의 삶을 소중하게 끌어안을 수 있도록 말이다.


직설적으로 고하자면 나는 네가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하지만 혹여 언젠가 다시 아픈 날이 오더라도, 그것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네가 못 견딜 만큼 아픈 순간이라면, 나라도 그 곁에 있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찬란함 없이 생존한 우리일지라도.

나의 봄과 너의 초여름을, 이렇게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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