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by 하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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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털이란 무엇일까? 현대 사회에서 털은 '제거의 대상'이 되었다. 남성은 면도를 하고 여성은 제모를 한다. 하지만 털이 지금처럼 천대받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고대 남성들에게 수염은 위엄과 지혜, 권위, 그리고 남성성의 상징이었다. 당시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염을 길렀고, 심지어 수염이 나지 않는 이들은 가짜 수염을 붙여가며 권위를 '제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수염의 위상은 곤두박질쳤다. 현대인에게 수염은 지저분함, 게으름, 혹은 백수(?)의 상징이다. 왜 이런 가치의 역전이 일어났을까? 나는 그 원인을 지극히 현실적인 '실용성'에서 찾는다. 수염은 음식을 먹을 때 필연적으로 '오염'을 동반한다. 상상해 보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두 대통령이 식사 중 서로의 수염에 묻은 육개장 건더기를 떼어주는 모습을. 위엄은 그 붉은 국물과 함께 자취를 감출 것이다.



또한, 수염이라는 '생물학적 계급장'이 무효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남성우월주의 시대에 수염은 여성은 가질 수 없는 독점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남녀평등의 시대가 오면서, 굳이 특정 성별만의 신체적 특징으로 권위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독점은 폐기되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설을 세워보자. 만약 여성들에게도 수염이 나기 시작한다면 사회는 어떻게 반응할까? 수십만 원을 들여 제모를 하던 여성들이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의 인식은 다시 털에 관대해질까? 여전히 수염을 게으름의 척도로 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선입견이란 결국 환경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 마스크를 쓴 사람은 무언가를 감추려는 수상한 자로 의심받았다. 그러나 팬데믹을 통과한 지금, 마스크는 그저 평범한 행인의 착장일 뿐이다. 수염 역시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돋아난다면, 그에 덧씌워진 편견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결국 우리가 믿는 견고한 선입견이란, 사실 환경이라는 변수에 따라 언제든 손쉽게 뒤집힐 수 있는 가변적인 논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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