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적부터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집착하는 경향이 다소 강했다. 그렇기에 특히 '이해'라는 단어를 사람들과 대화 할 때에 감정적인 상황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이라고 나오고 나는 이를 학문적 또는 시험에서 물어볼 수 있는 확실한 답이 있는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감이라는 단어는 애초에 대화할 때에 잘쓰이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공감'의 사전적 의미는 '타인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이라고 나온다. 때문에 반대로 확실한 답이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에 내가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해이던 공감이던 내가 상대방의 상황에 있어서 완벽히 알고 상대가 그 상황안에서 받아들이는 감정을 내가 완벽하게 알겠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표현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아.'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그것이 상대를 존중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제 나는 단어의 의미에 어릴적 만큼 집착하지는 않지만 이해라는 단어를 대화할때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습관적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나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함으로서 내가 갖과 있는 뇌전증이라는 병으로 부터 내 삶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