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젓가락

분리의 기술

by 하루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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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젓가락'은 한 몸으로 태어나 둘로 찢겨야만 비로소 제 쓰임을 다하는 기이한 도구다.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잘 분리되어야' 한다. 만약 결을 따라 매끄럽게 찢어지지 않고 한쪽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다면, 그 젓가락은 음식을 집기는커녕 손가락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버린다.



관계 역시 이 '나무젓가락의 분리'와 닮아 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학교에서의 졸업, 연인과의 결별. 한 몸이었던 것들이 타인이 되기 위해서는 서늘할 정도로 정교한 분리의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찢어지는 고통에만 매몰되어, 정작 '어떻게 매끄럽게 찢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자식은 부모의 그림자에 갇히고,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학생은 사회에 쉽게 속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결별은 평생의 감정적 부채로 남는다.



이 비극적인 '서툰 분리'의 배후에는 미디어가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언제나 '영원한 하나'를 숭상하며, 분리와 이별을 오직 눈물과 상처로만 묘사한다. 미디어 속에서 독립은 배은망덕이 되고, 결별은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무대다. 이성적인 거리 두기나 매끄러운 퇴장은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당한다. 우리가 나무젓가락을 쪼개듯 담백하게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자꾸만 감정의 가시를 남기는 이유는, 미디어가 심어놓은 '집착의 서사'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이제 이별의 신파를 멈추고 '분리의 기술'을 주도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상처 없이 타인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된 도구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책임이 필요하다. 분리는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공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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