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니? 나는 더 힘들다.

by 술대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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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인 둘째 아들이 어느 날 숙제를 하면서 한숨을 푹 쉽니다.

"아~ 힘드네... 대한민국 학생으로 산다는 게 참 쉽지 않네"


아니 뭐가 그리 힘드냐고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그러자 구구절절해야 할 일들을 말로 늘어놓습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놀고 싶은 것도 많은데, 숙제하느라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하고 나서 좀 뭐 하려고 하면 부모님이 불 끄고 자라고 한다는 것이죠.


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돈 걱정, 직장일 걱정, 은퇴 후 걱정, 나라 걱정, 지구 걱정 등 상대적으로 고민의 스케일이 아들보다 큰 저로서는 둘째의 그런 투덜거림이 그저 귀엽기만 합니다.


"그것도 고민이냐? 내 보기에는 너무 복에 겨웠다."

라고 얘기하니, 예상대로 아들은 발끈합니다.

"아빠도 어렸을 때 생각해 봐, 그때도 이런 것들 고민 안되고 복에 겨웠어?"


뜨끔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 일은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이의 일은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르신들은 어르신 나름대로 각자의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고민의 절대치 경중은 분명 있겠으나 각 개인의 내면 안에서는 어차피 그 크기는 매한가지 클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일원동의 큰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연신 택시미터기만 보고 계셨습니다. 그 몸이 힘든 와중에 택시 미터기를 왜 보실까, 물론 절약이 몸에 베인 당신 삶의 방식이었겠지만, 삶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는 순간에 고작 아들이 낼 몇천 원 택시비에 대한 근심이라니......


저는 그 이후 사소한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죽기 전에 택시비 따위에 걱정하는 어머니처럼은 되지 말자라고 다짐했었습니다. 좀 더 나중에 느낀 거지만, 어머니의 그 미터기를 바라보는 마음이 단지 사소한 걱정만은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어머니는 희귀 암에 걸리셨는데, 결국은 폐로 번졌습니다. 연신 가뿐 숨을 내쉬던 어머니는 어느 새부터 정신을 잃으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병원에서는 여생이 얼마 안남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약성분의 진통제를 사용하였고,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 정신이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는 병상 앞에서 연신 울고 있던 가족을 보시다가 유난히 핼쑥한 저를 쳐다보시며 대뜸


"밥은 먹었니?"


와~ 며칠을 그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시다가 정신이 돌아오시면서 고작 하신다는 말씀이, 밥은 먹었냐는 말입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자신 때문에 자식들이 배를 곪지 않나 그게 염려되신 것입니다.


사실 위의 택시비도 그렇고 이런 것들은 걱정이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그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힘들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하지 않으셨는데, 아마 그 고통을 자식에게 조금이래도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일 거라 추측해 봅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삶의 어려움과 힘듦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 새벽같이 일어나 아이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아이들 옷가지들을 챙기다 보면,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내가 그 예전의 어머니처럼 그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끔 아이들에게 부모노릇하기 힘들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건 부모의 의무 아니겠어~, 아빠도 다 그러고 자랐잖아"


자식 뒷바라지 하는 건 부모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과연 의무만일 까요? 분명 다른 게 있습니다. 예전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을 자신 있게 사랑이라고 말할 자격은 안 되겠지만, 최소한 부모자식 간의 情이라고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중2병에 걸린 듯 아이의 말대꾸가 점점 날카로워집니다.


아들의 반항적 말투를 보면서 결국 저의 말투를 본받은 것이라 생각하고 반성을 했습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표현의 실수가 그릇된 소통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드니? 나는 더 힘들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에구, 힘들겠다. 그래도 우리아들 잘하고 있어, 파이팅~"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요즘 가끔 이런 말들을 하니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적응한 듯 하네요.


그렇다 해도,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다가 말씀하셨던.. "밥 먹었니?" 그 말에 감히 비견할 까만은... 그래도 어느새 저도 어머니를 조금은 닮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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