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와이프를 직장에 데려다주면서 무료하던 차에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좋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센 바람 높은 파도가 우리 앞길 막아서도 결코 두렵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수많은 시련들 밝은 내일 위한 거야" 쿄요태의 '우리의 꿈'이라는 노래였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때마침 좋은 노래 틀었다는 시답지 않은 칭찬을 듣기 위해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생각과 달리 표정이 좋지 못하였다.
[ 아... 뭔가 고민이 있나 보구나 ]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음악은 소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순간 그 음악이 나에게도 소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내 짝지기가 음악을 불편해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도 감동적인 음악을 소음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나는 가만히 볼륨을 작게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 생각이 떠오른다. 어느 점심시간에 명예퇴직이 얼마 않남은 직장 상사가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그 상사는 너무 감동에 취해 이것을 모든 사람이 듣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음악을 크게 틀었지만,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소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감히 명예퇴직을 얼마 안 남은 그분에게 충고를 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분보다 직위가 높은 사람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화 '쇼생크탈출'을 보면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 안 방송실에서 문을 잠그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어느 부분을 방송으로 크게 틀며 만족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순간 그에게는 그 음악은 천상의 음악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걸 갑자기 듣게 된 죄수들은 아름다운 음악이라기보다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무슨 사고일까?'라는 생각이 대부분이지 않았을까? 아마 그분도 앤디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죄수나 교도관 같은 심정이었겠지.
이렇듯, 같은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선율의 명곡으로 가슴을 울려 퍼지게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잡음밖에 안 된다.
생각해 보면 행복과 불행도 결국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감정이 갈리는 경우가 있다. 와이프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고 없던 어느 날... 맥주 한 캔과 마른오징어를 씹으면서 명작 영화 한 편을 보는데,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행복함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그다음 날은 뭔가 공허함과 외로움이 밀려오면서 좋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혼자서 외로움만 느낄 게 아니라, 집안을 대대적으로 청소해서 가족이 돌아왔을 때, 쾌적함을 느끼게 하자고 해서 열심히 대청소를 하고 다시 만족감을 느낀 기억이 난다.
다시 아침의 쿄요태 음악을 듣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아내가 와~ 이 음악 좋네, 이 노래 뭐야? 마침 음악 잘 틀었어..라고 한마디 언급을 해줬다면 행복감이 배가 되었을 듯싶다. 하지만, 아쉽게 상황이 그렇지 못하였고 음악은 소음으로 바뀌었다. 이런 경우는 내가 행동과 마음가짐을 바꾸면 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한마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런 기회는 얼마든지 다음에 다시 찾아올 수 있고 다음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본다. 절묘한 순간은 가끔 있어야 절묘한 것이니....
살며시 아내에게 무슨 고민이 있냐고 물었다. 역시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직장문제였다.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섣부르게 '잘 해결될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잘 알기에, 같이 한숨을 내쉬며 '큰일이군... 고민되겠구나'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때는 그냥 공감해 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문제는 해결이 된다. 지금 당장은 고민이 되겠지만......
회사에 도착해서 다시 유튜브로 코요테의 '우리의 꿈'을 들어봤다. 좋긴 했지만, 라디오를 딱 틀었을 때, 들었던 그 정도 감흥은 아니었다. 아무리 종이 한 장 차이라 해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조만간 다시 오리라 믿는다. 앤디가 느꼈을 그 감흥이 다시 나에게도 찾아오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