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어떤 이(S)가, 특정 사업이 잘못된 것에 대해 여러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이걸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A는 이걸 안 했고, B는 이걸 안 했으며, C는 이것에 대해 너무 소홀했다. 내가 몇 번이나 강조했는데 하면서 한탄을 하는 겁니다. 이후 A를 만났는데, A가 또 사업에 대해 얘기합니다. B하고 C가 이걸 놓쳤고, 결정적으로 S가 문제였다고, 제대로 컨트롤하는 듯하다가 막판 중요한 시점에 팀원들한테 제대로 방법을 얘기 안 해주니 우리처럼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겠냐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 탓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가족과 친구, 직장동료에서부터 시작해서 멀게는 정치인들, 역대 대통령들, 미국과 이웃나라들, 역사적인 인물들한테도...
어찌 보면 그렇게 남 탓이라도 해야 '나'라는 존재가 온전히 설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본능 같은 게 아닌가도 생각이 듭니다.
아주 오래전 고등학교 미술시간이었습니다.
당시는 조소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9월 초에, 10월 셋째 주정도에 조소를 할 것이니 그때는 조각칼과 찰흙을 준비해 와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보통 그렇다고 해도 그전(前) 주 미술시간에 한번 더 말씀해 주시는 게 통상의 룰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다이어리가 있어서 적어놓은 게 있었습니다. 전(前) 주 미술시간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께 "다음 주에 조각칼과 찰흙준비하면 됩니까?"라고 물으려고 하다가, 숫기가 없었던 저는 그냥 넘어갔습니다.
해당 미술시간에 조각칼과 찰흙을 가지고 온 사람은 저하고 제 짝꿍뿐이었습니다. 짝꿍한테는 제가 얘기를 해줬거든요. 미술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준비물을 가지고 온 학생이 거의 없자, 화를 내셨습니다. 분명히 본인이 예전에 준비하라고 했지 않느냐, 왜 그걸 다들 놓치느냐 니들이 그러고도 학생이냐면서 흥분을 하셨습니다.
한 친구가, 보통은 미술시간 끝날 때, 다음 준비물을 말씀해주시지 않느냐, 그게 아니면 통상 물감에 도화지 아니었냐고 항변을 합니다. 선생님은 더 화를 내시면서 "모두들 남 탓만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천주교에서 '내 탓이오'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이 잘못되면 내가 먼저 잘못한 게 없는지 그걸 돌아봐야지 누구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은 나쁜 생각이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로 당시 국내 천주교의 추기경님을 시작으로 '내 탓이오' 운동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선생님 말씀이 일리는 있었으나, 무엇인지 개운치 않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니, 결국은 선생님도 학생 탓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선생님께서 "아, 내가 수업 전에 한번 더 얘기한다는 것을 깜박했구나, 내가 잘못했네, 그렇지만 너희들도 체크를 해두고 전 시간에 알려줬으면 우리 모두 이런 실수를 안 했을 텐데 말이다"라고 하셨다면 좀 더 설득력 있는 말이었을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일하게 준비물을 챙겨 왔던 저와 제 짝꿍도 잘못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어떤 일이 그르친 배경에는 각자 어느 정도 잘못한 부분이 있는데, 자신의 자존심을 깎고 싶지는 않으니 일단 남 탓부터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다시 하게 된 배경에는 오늘 아침에 사건이 있었습니다.
집을 나서는데 비가 오는 겁니다. 우산통에 우산이 1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가방의 비상용 작은 우산을 쓰고 회사로 출근했습니다. 이후에 아내한테 톡이 왔습니다.
집에 고장 난 우산 한 개 밖에 없어서 아이도 그렇고 본인도 그렇고 비 맞고 갔다고, 오늘 당장 차에 있는 우산들 집에 가져다 놓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집에 우산은 건드린 적도 없고 지난주만 해도 5개나 있었는데, 본인들이 회사나 학교에 놔두고 와놓고 책임을 나한테 덮어씌우고 있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죠. 저는 항상 가방에 1개, 차에 1개를 비상용으로 구비를 해놓고는 있었거든요. 그리고 다음 톡이 오면 그런 식으로 일이 잘못되면 나한테 책임을 덮어씌우는 습관 좀 버리라고 한마디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회사 동료들의 사업실패 책임공방을 듣게 되었고, 과거 고등학교 선생님의 얘기까지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하! 싸움이라는 것이 이래서 발생하는 거구나" 모두들 어느 정도의 잘못을 하고 있었지만, 자기 잘못 얘기는 쏙 빼고 남 탓을 하고 때로는 서로의 감정선을 건드리게 되는 것!
사실, 내 책임을 두고 보자면, 우산통에 우산이 1개밖에 없을 때, 가족들에 얘기를 했어야 했다. 그리고 내게는 차가 있으니, 내 가방에 있던 작은 우산과 차에 있는 비상용 우산이래도 가족한테 양보하고 나는 잠깐 비를 맞고 갔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성싶다. 별 고민 없이 어딘가 우산이 있겠지 생각하고 나간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겠지만, 일단 내 잘못이라고 원망을 들으니 화가 불쑥 솟은 것을 보면 나도 예전의 그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처럼 정작 본인이 남탓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한테 남탓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일단 톡으로 화내는 것은 그만두고 집에 가서 차분히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별도의 개인우산이 있기 때문에 내가 집의 우산을 가져가진 않는다. 하지만, 비가 오는 것을 알았고 우산통에 우산이 1개밖에 없는 것을 알았는데도 그냥 나간 건 내가 잘못한 듯싶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좀 더 신경 쓰겠다"라고 말할 예정입니다. 말끝에 아내와 아이들한테 [그런데, 우산을 가져갔으면 집에 다시 가져다 놓는 습관을 들이라] 라고 얘기하려다, 이건 잔소리영역이고 해 봐야 득 될 게 없으니 빼려고 합니다. 아마 벌써 스스로 느끼고 있을 듯합니다. 항상 그렇듯, 가까운 사이일수록 뭘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느끼게끔 하는 게 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