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청국장 그리고 총각무

by 술대신차


얼마 전 새벽에 출근을 하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면을 하고, 간단한 요기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갔는데, 식탁에 노란 붙임쪽지가 하나가 식탁 앞에 비스듬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청국장 데워먹고, 총각무도 꺼내먹어"


정말 필요한 말만 딱 쓴 매우 건조한 아내의 글이지만, 새벽 급한 출근길이라, 대충 김에 간장만 찍어서 밥 위에 얹어 몇 숟가락 먹고 갈 남편을 생각한, 몹시 고마운 메모라 할 수 있습니다.


청국장을 데워 맛보았습니다. 신김치가 구수한 청국장과 어우러져 기가 막힌 맛을 내었습니다.


[ 아.. 이건 칭찬을 해줘야 하는데...... ]


잠 많은 아내가 나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국을 만든 작은 이벤트는 보기 드문 큰 선물 같은 것입니다. 이게 엄청난 일인 것은 남편인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모를 일이기도 합니다. 전날 저녁에 해놓아도 되었겠지만, 청국장의 맛을 극적으로 하기 위해서인지 내가 깨기 1시간 전쯤 요리를 완성한 것도 고마운 정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내는 새벽요리를 마치고 다시 누워 곤히 자고 있었기에, 깨워서 칭찬을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 붙임쪽지로 답장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마음이 썩 내키진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 생각했던 것이지만, 청국장과 나의 엄지 척을 사진으로 찍어 스마트폰 문자로 보냈으면 좀 더 센스 있는 칭찬이지 않았을까 했는데, 그 순간에는 그런 아이디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굳이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고마워할 거 다 느낄 것이라고 생각이 다시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총각무를 꺼내 한 입 물어보았습니다. 청국장과 달리 그것은 맛은 별로 없었네요. 사실, 맛이 없다기보다는 어렸을 적부터 길들여진 그 맛이 아니다 함이 맞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어디입니까, 청국장에 총각무라 함은 환상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기에 그런대로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네요.


그런데, '총각무'란 단어는 제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는 '달랑무' 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의 달랑무는 맛이 시쳇말로 기똥찼습니다.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되어 온 맛으로 보이는데, 다른 반찬 없어도 그 달랑무만 있으면 세상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도시락 반찬으로도 그것을 종종 싸주셨긴 했는데, 그런 달랑무는 개인적으로 맛이야 있었지만, 소시지나 계란 같은 반찬이 비주얼적으로나 다른 아이와 나눠먹기에도 더 훌륭했기 때문에,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 그런 반찬은 없고 달랑무가 있으면 적잖이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는 반찬 뚜껑을 열었는데, 달랑무 세 조각과 김치국물이 묻은 검은콩조림 반찬이 한쪽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이내 짜증이 몰려와서 다시 반찬뚜껑을 확 닫아버렸고, 그 소리에 놀란 선생님이 다가와서 나에게 물으셨습니다.


"ㅇㅇ아, 왜 그러니, 반찬이 마음에 안 드니?"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맨밥만 삼키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본 선생님께서 본인의 반찬을 내 밥 위에 얹어 나누어 주시며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이 김치, 선생님이 먹어봐도 되니?" 선생님은 내 반찬 뚜껑을 조심히 여시자마자 달랑무 한 개를 가리키며 내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은 그 달랑무를 드시더니, 너무 맛있는 김치라고, 이런 김치를 매일 먹을 수 있는 넌 참 행복한 아이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가서 어머니께 그 얘기를 할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선생님이 맛있다고 한 부분은 괜찮았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반찬뚜껑을 닫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데, 어린 마음에 그래도 그런 말을 하면 어머니의 기분이 좋을 건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누나가 학교 끝마치고 달려와서 빈 도시락 통을 어머니한테 내밀며 흥분한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엄마, 정순(학교절친)이가 엄마 달랑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데"라고 칭찬을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어머니는 방긋 웃으시며 누나의 도시락통을 받아 정리하셨습니다.


[ 아.. 나도 칭찬할 걸 그랬나...... ]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라도 반찬뚜껑 닫은 얘기는 빼고, 우리 선생님도 엄마 달랑무 먹어보고 맛이 좋았다고 얘기했다고 말하면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시기가 늦어서 할 수 없는 말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계속 응어리로 남아 있었음에도 한번 놓친 표현의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서 급작스럽게 암으로 돌아가실 때까지도 단 한 번도 달랑무가 맛있다고 표현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이 지나, 아버지와 식사를 하기 위해 김치냉장고를 열어보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4통 들어가는 김치냉장고에 3통이 달랑무로 꽉 차있었습니다. 하~ 암이 온몸으로 퍼져 치료도 포기하고 집에서 가쁜 숨만 쉬던 어머니가 언제, 어떻게 저런 달랑무를 담그셨는지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다만, 그걸 담그신 어머니의 마음은 감히 글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가슴속으로는 깊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달랑무 한통만은 끝내 드시지 않으시고 그 김치냉장고에서 3년 동안이나 그대로 나 두셨습니다. 가끔 뚜껑을 열어 그걸 한참을 바라보시다가 닫으시곤 했네요.


아내의 총각무를 젓가락으로 들고서 멍하니 지난 추억을 한참 생각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출근할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서둘러 회사로 갔지만, 회사에 있는 내내 뭔가 마음이 불편했죠.


[ 뭐지? 이 불편한 기분은? ]


그 불편한 기분의 정체가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표현의 부재'라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날 아내의 새벽 청국장은 그때까지 먹어본 중에서 최고일 정도로 맛이 있었고, 그 정성도 너무도 고맙다고 속으로 생각했음에도 그때까지 표현하진 못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선생님께서 어머니의 달랑무가 맛있다고 했던 것을 끝내 어머니께 전해지 못했던 그 아쉬움이 현재의 상황과 오버랩되어 나를 찝찝하게 만든 게 분명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마침 식구들이 밥을 먹으려 하는 때였습니다.


[ 이 때다 ]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얘기하기를...

"새벽에 먹었던 자기의 청국장은...... 거의 최고 수준이었음! 따봉~~~" 하며 엄지 척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 누나의 칭찬에 방긋 웃기만 하셨던 어머니와 달리, 와이프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잠 많은 본인이 새벽에 몰래 일어나 어떻게 청국장을 해놓았는지부터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며, 역시 본인의 요리솜씨가 죽지는 않았구나 하면서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표현애 인색했던 제가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기분이 날아갈 듯 기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그 말에 저의 기분도 좋아짐은 당연했고요~

하루종일 저를 짓누르던 그 찝찝함이 해소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그때까지도 미처 하지 못한 말을 마음속으로 외치듯 말했습니다.


"엄마의 달랑무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고, 그때 우리 선생님도 엄마 달랑무가 너무 맛있어서 나를 부러워했었어! “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못다 한 감사의 말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를 더 외쳤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하늘로 가기 전 선물해 주신 그 달랑무... 아버지와 맛있게 먹었어요. 어머니의 사랑 잊지 않을게요. 고맙습니다."


[ 고마움의 표현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


어머니를 닮은 저는, 미안할 때나 감사할 때나 밖으로 별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상대방이 알아서 판단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서로 표현을 안 해서 생긴 많은 오해와 미련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타고난 성격이야 완전히 고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요?


그날 새벽의 청국장으로 많은 것을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적절한 표현은 사람과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마운 마음이 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지 않는 것은, 끊어진 다리 앞에 멈춰 선 자동차와 같다고 할까, 그 마음이 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는 언어를 통한 마음의 다리를 오가야 서로가 돈독해진다는 것을 나이 지천명이 돼서야 제대로 느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골목가게 사장님의 늦은 퇴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