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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Jan 29. 2024

품고 있는 날개

워킹홀리데이의 현실

음료도 다 만들 줄 아는데 힘들게 뭐가 있어?

나는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

이 일본친구는(Y라고 부르겠다.) 영어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음료를 아무리 잘 만들면 뭐 하나.

주문을 받을 때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손님들이 화를 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며 울먹였다.


내 머릿속에 그리는 워킹홀리데이는 외국에 나가서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버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바쁜 사람들은 영어 못하는 사람에게 영어를 알려주며 커피를 주문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빨리 본인이 주문한 커피를 들고 일을 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주문을 잘 못 알아듣는 Y에게 손님들은 화를 내며 돈을 얼굴에 던지기도 하고(그때는 앱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이런 직원을 뽑은 매니저 당장 부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잘 익은 바나나(Ripe Banana)를 못 알아 들어서 바나나로 뺨을 맞기도 했다.

그 후로 자기는 Ripe Banana는 죽어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가 늘긴 느는구나.


Y는 쭈그려 앉아서 매일 울었다고 했다. 주문을 받을 때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악마가 들어오는 것 같았고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를 붙잡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차라리 취직이 안 돼서 일본으로 그냥 돌아갔어야 한다며 펑펑 울었다. 너도 참 고생이 많다.

내가 20살 때 워킹홀리데이로 왔었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지? 그때 오지 못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었을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Y에게는 좋은 동료가 있었다. 이 동료는 옆에서 Y가 실수를 하거나 잘 못 알아들을 때마다 도와줬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같이 한잔 하러 가기도 하고 휴무가 같을 때는 같이 운동도 하고 사교모임에 Y를 데려가는 등 Y를 열심히 챙겨줬다. Y는 고등학교 때까지 일본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동료와 같이 축구도 하며 더 친해졌다. 하루는 Y가 너무 힘들어하자 좋은 곳에 데려가준다며 스트립쇼에 데리고 갔다.


춤을 추던 댄서에게 캐네디언 동료는 팁을 주며 귓속말을 했고 그 댄서는 Y에게 다가가서 Y만을 위해 춤을 춰주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Y는 당황했고 그런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동료는 기뻐하며 뿌듯해했다.


넌 정말 행운아야! 정말 좋은 동료를 친구로 두었잖아. 부러워.

난 진심으로 Y가 부러웠다. 이런 좋은 친구를 사귀다니.


좋은 친구 덕분에 Y의 영어실력은 어학원만 다니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다. 그 친구를 부끄럽게 하고 자존감을 짓 밞은 영어는 어느새 그 친구를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제 친구는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친구는 강해져서 예전처럼 울거나 뒤로 숨지 않았다.


이 힘든 과정을 버티면 Y처럼 영어도 늘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는 좋은 경험의 시간이 된다. 그러나 이 힘든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마트나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곳으로 도망친다면 영어는 당연히 늘지 않고 좋은 친구도 없고 노동력만 착취당하는 끔찍한 캐나다의 삶이 될 것이다.


동료들과도 호흡을 잘 맞추며 즐겁게 일을 하는 시간은 왜 이리 짧은 것인지. 이 친구는 이제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이번에는 일본에 돌아가기 싫다며 울었다. 동료들과 그리고 제일 많이 친해진 친구와 헤어지기 싫다며 힘들어했지만 본인의 뚜렷한 목표를 위해 Y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에게 선물을 줬다.

스타벅스 종이쇼핑백에 스타벅스 원두커피와 텀블러였다.

카드에는 나의 학교생활과 캐나다의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적혀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이렇게 내 친구는 열심히 사는 한편 다른 일본 여자애는 멕시코 남자애와 진한 사랑에 빠졌다.

그 멕시코 남자애는 멕시코에 있는 약혼녀에게 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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