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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적막한 도시 레 (Leh)

바람의 말 룽따 (Lung Ta)

by 농장금

살면서 혼자서 여행해봤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20대 초반에 해보았던 내일로와 작년 추석에 영월에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간 정도이다. 내일로는 5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전주, 순천, 군산 등을 여행하는 걸 계획했지만 4일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영월은 1박 2일로 놀러 갔고, 패러글라이딩이라는 액티비티가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재미있는 여행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여행의 추억도 머릿속에 오래 남지 못하는 거 같다.


그렇게 지루하게 보냈던 뉴델리에서의 하루의 끝에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혼자서 가방을 꽁꽁 싸매고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좋았다. 다양한 곳에서 친구들이 오다 보니, 인도가 꼭 화합의 장이 된 것 같았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인만큼 이번 여행에 대해 모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양각색의 여권이 문제가 될 거라는 것은 레 (Leh)에 도착할 때까지 알지 못하였다.


Copyright 2022. 농장금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겨울이 주었던 레의 첫인상은 차갑고 적막한 곳이었다. 겨울에 갔기 때문에 도시의 색깔은 대지 본연의 색인 갈색에 가까웠고, 산 위의 만년설은 하얀 구름과 맞닿아 멀리서 보면 만년설과 하늘이 구분이 안 되는 곳이었다. 더구나 1시간 전에 비행기를 탔던 뉴델리는 반팔을 입고 돌아다녀도 더울 정도였지만 해발 3,000m에 위치해 있는 레는 야상을 입고 있어도 추울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레의 첫 인상이 좀 더 차갑게 느껴졌던 것 같다.


레에는 고층 건물이 얼마 없기 때문에 우리가 머물렀던 3층 정도 되는 호텔은 이미 충분히 고층 건물이었기에 창 밖으로 선명하게 레의 높은 산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머물렀던 숙소에서는 인터넷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2018년도에는 아직도 스마트폰보다는 2G 폰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기 때문에 호텔에서도 와이파이 신호가 잡히기는 했으나 사용이 가능한 속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여행이 일찍 끝난 날은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시내에 있는 카페에 나와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레에서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스마트폰 속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바로 옆에 있는 서로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인구의 약 77%가 불교 신자인 레에는 정말 많은 사원들과 스투파들이 있다. 특히 스투파가 위치해 있는 곳은 대개 높은 곳이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에서의 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 불교 종파의 한 곳에서 세계에 평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건립 샨티 스투파 (Shanti Stupa)의 경우는 석양과 파노라마 뷰로 유명한 곳이라서 저녁 시간 때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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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가지 신기했던 것은 바로 룽따 (Lung Ta)였다. 룽따는 티베트어로 '바람'을 뜻하는 룽과 '말'을 뜻하는 따가 합쳐져서 '바람의 말'이라고 해석되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과도 같다. 처음 룽따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로 룽따를 보았을 때는 마치 만국기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깃발은 빨간색 (불), 노란색 (땅), 초록색 (물), 파란색 (하늘), 흰색 (공기)로 5 원소를 상징하고 각 깃발에는 불교 경전이 쓰여 있다. 이렇게 룽따는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수호기로 레의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특히 룽따가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자신의 소원을 이뤄준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룽따를 만든 정성을 바람이 그들이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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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의 마지막 관광지 코스는 레 팰리스 (Leh Palace)였다. 이곳은 1600년 경에 지어진 곳으로 당시 라다크 지역의 위세를 보여줄 수 있는 궁전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살고 있지 않는 궁전을 올라가기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이곳을 매일 같이 오르락내리락했을 과거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궁전의 끝에 다다르니 해가 어느새 도시를 병풍같이 감싸고 있던 산 뒤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해도 저물어가다 보니 궁전의 모습이 뭔가 더 쓸쓸해 보였다. 높은 곳에 위치해서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도 없었을 곳이었을 텐데 이 넓은 궁전에서 살고 있었을 500년 전의 왕의 겨울밤은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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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의 겨울밤은 빨리 찾아왔고, 그만큼 도시는 금세 어두워졌다. 거리에는 불이 들어온 상점보다는 꺼진 곳들이 더 많았고, 가로등의 불빛보다 달빛이 밝게 느껴지는 곳도 많았다. 더군다나 인터넷이 없는 스마트폰은 더 이상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카메라로 전락해버렸기에 긴 겨울밤이 더 길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한 명씩 레의 고요함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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