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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가 있는 곳

레(Leh): 저녁이 있는 삶

by 농장금

'오래된 미래'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라는 스웨덴의 언어학자가 1990년 대 초에 출판된 책으로, 그녀가 인도의 라다크 지역에서 살면서 그들의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 지향적인 도시가 어떻게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되어 가는지를 기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가 라다크를 처음 방문했던 1975년도의 모습을 지금은 찾아볼 수는 없겠지만 책에서 묘사한 그 때의 라다크의 모습을 조금은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중간에 위치한 라다크 지역은 대한민국의 60% 정도의 크기가 되는 굉장히 큰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 지역에서 거주하는 인구는 27만명 밖에 안되는데 그 이유는 라다크 지역은 대부분 산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다크 지역의 수도인 레에서 거주하는 인구 조차도 3만명이 되지 않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Copyright 2023. 농장금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둘째 날은 레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사원들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레의 주변에는 많은 티벳 사원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사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차로도 20~30분씩 이동해야 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에 눈은 저 멀리 펼쳐진 만년설로 뒤덮혀 있는 산을 보기에 바빴고, 입과 귀는 그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뱉고 주워담기에 정신없었다.


레의 사원들을 방문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곳곳에 있는 여유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누워 있는 개들도 그저 가만히 앉아 사색을 즐기는 승려의 모습도 누구나도 갈구하는 여유로운 순간처럼 보였다. 특히 레의 개들은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먼저 다가와서 다리에 얼굴을 부벼댔다. 그렇게 레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모두 여유롭고 아무런 걱정이 없이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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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 쯤 우리는 숙소가 있는 도심지로 돌아왔는데, 벌써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리고 몇 몇 사람들은 불가 주변에 모여서 불을 쬐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 모습 역시 저녁이 있는 삶의 모습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저녁 6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가게의 문을 닫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아 보였다.


서울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도시인 것 같다. 아니,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다 그렇다. 해가 저물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는 고층 건물의 불켜진 사무실들과 아파트들의 거실의 조명이 서울을 더 아름답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의 밤에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보다 사람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이, 집집마다 새어나오는 거실의 조명보다 밤 하늘의 달과 별이 더 밝게 빛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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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어둑해지고 호텔의 방들은 하나둘씩 불이 꺼지며, 그렇게 우리도 별 불만없이 레의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창 밖을 통해 바라 보았던 레의 하늘에는 수 많은 크고 작은 별들이 모래사장의 모래알들처럼 촘촘하게 박혀 있었고 둘째날 밤도 그렇게 레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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