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물 받은 하루
암리차르에서의 하루는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도시가 크지 않은 까닭도 있었지만 도시에 보고 즐길거리가 많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 것 같다. 암리차르는 라호르(Lahore)라는 파키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와 매우 인접해 있고 두 도시는 육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매일 해가 저물 때쯤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국기 하강식을 진행하며 국경을 폐쇄한다. 이는 꽤나 유명한 행사였는데, 여행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암리차르에서 주변에서 이러한 행사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광장을 걷다 우연히 터번을 쓴 어떤 툭툭 기사분께서 우리에게 국기 하강식을 보러 가냐고 물어보았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국기 하강식이 열리는 와가(Wagah)로 가는 툭툭에 올랐다.
펀자브 지역의 오후의 햇살은 강렬했다. 국기 하강식에 특별한 기대가 없었던 우리에게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강렬한 태양이 달궈 놓은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툭툭을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한 와가에서 더 이상 차량으로는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내려서 걸어가야 한다고 기사분께서 말씀해 주셨다. 주차장 입구에는 관광객의 얼굴에 인도 국기를 그려주는 소년들이 있었고, 가격도 저렴하길래 우리도 양볼에 인도 국기를 그리기로 했다. 하지만 페이스 페인팅을 해준 후에 그들이 처음에 부른 금액은 양볼의 국기 가격이 아닌 볼 한쪽에 하나의 가격이라 우기며 돈을 더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툭툭 기사님께서 소년들을 힌디어로 따끔하게 혼내주셨고 원래 부른 것보다도 더 적은 돈을 주시면서 그들을 돌려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툭툭 기사님께 사실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돈을 지불해도 됐었는데 왜 혼을 내주신 거냐고 물어보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잘못된 방법으로 관광객들에게 돈을 버는 모습을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것 같아 자기라도 아이들에게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국기 하강식이 열리는 곳에 들어가니 이미 인도 쪽 자리는 터번을 쓴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뒤엉켜 앉아 우리의 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에 비해 파키스탄 쪽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분명 라호르에 거주하는 인구의 수는 암리차르의 10배에 해당하고, 직선거리도 더 가까운데 관광객이 적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그렇게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버스가 국경을 통과하고 국경 문이 닫히면서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었다.
국기 하강식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양측에서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절도 있게 연출하였다. 특히나 서로를 향해 누가 더 높이 발차기를 하냐를 보여줄 때는 저러다 바지가 찢어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인도 측의 함성은 중고음이었다면 파키스탄은 저음에 가까운 소리였는데, 인도 측의 관람객은 남녀노소 할 것이 자유로운 성비로 구성된 반면, 파키스탄 측에는 대부분의 관람객이 남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추측하건대, 파키스탄의 국교인 이슬람교 문화가 관람객의 성비 구성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은 장면은 파키스탄 측에서 만들어주었다. 처음 저 멀리서 음악과 함께 군인 한 명이 입장할 때는 잘 몰라 목발이 발인 것으로 착각했었는데, 인도의 국경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는 오른쪽 다리와 왼쪽 겨드랑이에 낀 목발로 걷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목발을 땅에 내려놓고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는 치마 같은 바지를 입었었는데, 음악에 맞춰서 외발로 돌고 있으니 마치 팽이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수십 번을 도는 모습을 몇 번을 하고도 넘어지지 않은 그의 모습이 신기했었고 한 편으로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수십 바퀴를 제자리에서 돌다가 양발로 멈추어도 어지러워서 균형을 잃고 쓰러질 것 같은데, 그는 그렇게 빙글빙글 수 십 바퀴를 몇 번이나 돌았지만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큰 감동을 준 그가 뒤돌아 나갈 때는 인도와 파키스탄 사람에 상관없이 모두가 정말 큰 환호와 박수로 그를 배웅해 주었다. 분명 누군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 그의 모습을 보며 이번 여행에서 또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아직까지도 국경 너머의 파키스탄인이 보여준 감동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암리차르에서 느꼈던 그 감동들이 아직도 마음의 한편에 남아 있다. 비록 이곳에서는 하루 정도의 짧은 시간 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다름을 차별이 아닌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시크교의 문화가 따뜻했었고, 참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툭툭 기사님의 모습에서 존경심이 생겼고, 의지를 보여준 국경 너머의 파키스탄인은 큰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암리차르에서의 하루는 마음속 한편에 따뜻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며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