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순간이 교차하는 바라나시(Varanasi)
북인도는 서쪽의 뉴델리, 아그라, 자이푸르를 포함한 골든 트라이앵글, 중부의 바라나시(Varanasi), 동부의 콜카타(Kolkata)가 대표 관광지로 각 지역마다 유명한 종교적 관광지가 있다. 서부는 이슬람 제국이었던 무굴제국과의 흔적과 시크교의 성지가 있다면, 중부는 힌두교의 최대 성지인 바라나시와 불자들의 대표 순례지인 부다 가야(Bodh Gaya)가 있고 콜카타에는 콜카타의 성녀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가 머물렀던 수도회 건물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지난 왔던 북인도 여행은 종교를 따라가는 여행이었고, 우리는 이슬람교과 시크교의 문화를 뒤로한 채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들을 방문하기 위해 바라나시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갠지스(Ganges) 강은 '빠르게 가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의 강가(Ganga)를 어원을 가진 곳으로 힌두교인들이 어머니처럼 여기며 공경하고 신성시하는 강이다. 바라나시는 이런 갠지스강을 품고 있는 도시로 과거 카시 왕국의 수도이자 현재는 유명한 힌두교의 성지로 수많은 힌두교 신자들이 삶과 죽음을 맞이하러 방문한다. 그들은 갠지스강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씻어 내며 깨끗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망자들을 화장하여 갠지스강으로 보내줌으로써 그들이 현생에서 씻어내지 못한 죄를 속죄하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갠지스강은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탄생과 죽음을 흘려보내고 있기에 오늘도 힌두교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오후에 도착한 바라나시는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아서 조용히 강가를 따라 걷기가 좋았다. 한참을 걷다 벤치에 앉아서 강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들과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바라나시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우리가 진짜 인도스러운 곳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뉴델리, 아그라, 우다이푸르 같은 도시들은 이곳만큼 날 것의 인도스러움이 아닌 어느 정도 정돈되고 다듬어진 듯한 모습의 인도였다. 하지만 이곳은 힌두교인들에게는 어머니로 여겨지는 갠지스 강이 흐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이곳에서 마주한 인도인들 마치 어머니의 품 안에 파고드는 태초의 어린아이의 모습 같은 모습이었다.
한참을 갠지스 강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어느 젊은 소년이 다가와 자기의 이름은 아비쉑이고 보트를 타고 강의 건너를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아비쉑은 이제 10대 중반으로 오전에는 학교에 다녀오고 오후에는 이렇게 관광객을 보트에 태워 갠지스 강을 구경시켜 주며 돈을 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보트는 원래 자신의 아버지의 것으로 자기가 돈을 얼른 모아 이 보트를 사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자기의 꿈이라고 했다. 또한 현재 2명의 여자친구가 있는데, 누구와 결혼을 할지 고민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이외에도 더 이상은 기억나지 않는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사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보트 위에 앉아 있으면서 들었던 진실과 거짓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한 아비쉑의 삶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즐거웠고, 일몰과 함께 주황색으로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해가 점점 저물면서 갠지스 강에는 우리처럼 보트에 올라 강 위에서 바라나시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태양이 강렬해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늦은 오후에는 강 건너편에서 바라나시의 일몰과 푸자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보트에 오른다고 한다. 갠지스 강을 따라 길게 뻗은 건물들의 불빛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푸자 의식이 시작되는 듯했다. 바라나시에서 진행되는 아르띠 푸자(Arti Puja)는 불의 예식으로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해 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어 예식 중 정말 많은 불을 사용하였다. 매일 오후 6시에 시작되는 아르띠 푸자는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이때 예식을 집전하는 사람들은 브라만 계급의 성직자만 가능하다고 한다. 푸자를 감상하기 위해서 이미 강가와 보트 위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시원한 저녁의 강바람을 맞으며 불의 예식은 바라나시에서 잊지 못할 저녁을 만들어 주었다.
바라나시가 준 첫인상은 진짜 인도스러움이었다. 인도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그대로 나타난듯한 곳이었고, 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인도를 느끼기 위해서는 바라나시를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곳에서의 매 순간마다 진짜 인도를 마주하기 위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우리는 바라나시 여행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