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의 아픈 기억
며칠 되지 않는 여행을 하다가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꼽아 보자면, 단연코 어디를 다치거나 몸에 탈이 난 순간인 것 같다. 가뜩이나 짧은 일정인데 좋지 않은 컨디션을 마주한다면 그 장소를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 여행의 경우에는 도시를 계속 이동하면서 여행을 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특히나 더 조심하고 신경 썼지만, 그렇게 원하지 않던 순간을 결국 바라나시에서 마주했다.
바라나시에서의 첫째 날 저녁, 아르띠푸자를 감상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뱃사공과 셋째 날에 일출 보트 투어를 약속했다. 우리가 둘째 날에 바로 보트투어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라나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불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인 사르나트(Sarnath)에 가기 위해서였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최초로 설법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사실 사르나트는 원래 여행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었는데, 바라나시의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분께서 추천해 주신 곳이었다.
사르나트는 오토 툭툭을 타고 이동하였는데, 바바라나시에서는 온통 인도인 뿐이었다면, 사르나트에 들어오니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이 보였다. 대부분은 미얀마에서 온 듯해 보이는 순례자들이었는데, 시크교의 성지인 암리차르와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에 비해 이곳은 생각보다 그 수가가 적어, 사르나트에 도착한 줄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가 사르나트를 제대로 찾아왔다는 보증표처럼 곳곳에 부처상들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중간중간 '대한민국 조계종 녹야원'이라는 안내 표지판들이 나타났다.
사르나트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사르나트 유적지로 과거에는 수 천 명의 승려들이 상주했던 곳으로 현재 남아 있는 터만으로도 그 엄청난 규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불교의 상징적인 나무인 보리수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었고, 유적지 곳곳의 길도 정갈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3세기 무굴제국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어 유적지에 남겨져 있는 일부 탑과 건물 터가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사르나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야쇼카왕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다멕 스투파(Damekh Stupa)이다. 이곳은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그 높이가 33m에 이르고, 오랜 시간 동안 건축된 스투파인만큼 탑의 하단은 마우리아 왕조의 양식으로, 상단은 굽타 양식으로 두 가지 양식이 혼합되어 만들어졌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통일된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탑에 새겨진 문양들과 사용된 벽돌의 색상을 보면 명확히 경계가 나눠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멕 스투파가 있는 유적지를 둘러보다 보니, 이곳의 유적지가 다른 종교인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다면 더 아름다웠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이곳은 불교의 성지인만큼 전 세계 각국에서 본국의 양식에 맞는 사원들을 건립해 두고 본국에서 오는 순례자들을 맞이하기도 하고 사르나트에 방문한 다른 관광객들에게 각 국가의 불교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같은 불교이지만 국가별로 문화와 건축양식이 다른만큼 각기 다른 모습의 사원에 들어가서 어떤 점이 다른 지에 대해서 구경하는 것도 이곳을 여행하는 묘미였다. 특히 태국 사원은 커다라 불상이 있고, 그 아래에 4 방위에 맞추어 불교 4대 성지를 묘사해두기도 하였고, 티베트 사원은 레 (Leh)에서 보았던 티베트 사원들의 축소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불과 2주 전에 있었던 레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사르나트에서의 하루는 불교를 이해할 수 있었고 국가별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원들을 보는 재미로 가득했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 어스름에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는데, 마침 주인아주머니께서 마살라 차이(Masala Chai)를 만들고 계셨다. 마살라 차이는 홍차에 계피, 생강, 후추, 정향 등의 향신료를 넣고 함께 섞어서 마시는 차인데, 레에서 처음 맛을 보고 잊고 있다 이곳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마다 내려주시는 맛을 보고 반해버린 차로, 아주머니의 홈메이드 마살라 차이를 운 좋게도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마셔보니 인도에서 기억하는 맛이 나지 않아 다소 아쉬웠는데, 아무래도 우유의 신선도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할 것만 같았던 바라나시에서의 여행은 셋째 날 일출 보트투어를 마친 후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보트 투어를 위해 우리는 새벽 일찍 뱃사공과의 약속 장소인 갠지스 강으로 향했다. 우리가 약간 늦게 나온 탓도 있기는 했지만 벌써 동쪽 하늘 저편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강 위에도 다른 보트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었다. 보트에 오른 지 1시간 정도 지나니 인도인들이 하나둘씩 목욕을 위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아침에는 강바람 때문에 배 위는 다소 쌀쌀했는데, 강물에 몸을 담그고 수영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에 감탄하며 갠지스 강 위에서의 아름다운 일출을 감상했다.
보트 투어를 마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뱃사공과의 작별 인사를 하던 중, 그가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자고 제안했다. 마침 배도 고프기도 해서 흔쾌히 그와 함께 차를 마시며 가볍게 아침을 때우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멈춰 선 곳은 강변가에 손수레 같은 카트를 두고 차를 판매하는 곳이었고, 당연히 빵조차도 없었다. 무언가 찜찜하기는 했지만 멀쩡하게 커피를 받아 마시는 뱃사공의 모습을 보고 마살라 차이 한 잔을 주문했는데, 한 모금을 마신 차의 맛은 익히 알고 있었던 맛과는 이상하리만큼 너무나도 달랐다. 알고 보니 차를 끓이기 위한 뜨거운 물은 갠지스 강물에서 오늘 아침에 막 퍼낸 신선한 물이었다는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갠지스 강물을 홀짝하고 한 모금을 마시게 된 것 있고, 그 한 모금의 결과는 저녁에 식은땀과 오한을 동반한 장염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바라나시에서의 셋째 날은 머리를 자른 기억 이외의 모든 기억들이 사라졌고, 그렇게 넷째 날도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상처가 난 게 아니라 음식을 잘못 먹고 아팠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소위 해외여행에서 흔하게 겪는 물갈이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차 한 잔에 앓아누울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부푼 마음으로 시작했던 바라나시의 여행은 아픈 기억만이 남게 되어버린 여행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누워서 인도 여행 사진들을 보다 보니, 인도 여행의 중반부가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내 몸이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몇 주간 기차나 버스에서 편하지 못하게 잠을 자는 날들도 있었고,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몸이 계속 쉬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차라리 일정이 여유로웠던 바라나시에서 아팠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침대에 누워서 보내고서야 겨우 몸이 회복되었고 바라나시에는 한식당에서 죽으로 속을 달랜 후에야 인도 여행의 후반부를 시작하는 다음 여행지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