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이 아쉬웠던 보드가야(Bodh Gaya)
처음에 인도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인도라는 나라에 다시 와보고 싶을까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 질문의 답은 여행의 후반부쯤에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마지막 며칠을 남겨둔 시점까지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분명 다시 오고 싶은 도시도 있었지만, 굳이 다시는 오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도시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여행했든 간에 공통적이었던 것은 반복되었던 행동들에 하나둘씩 '마지막'이라는 형용사가 붙어갈 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우리의 목적지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곳으로 알려진 보드가야(Bodh Gaya)라는 지역으로, 바라나시에서는 기차로 바로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야(Gaya) 역에 내려서 툭툭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도시였다. 분명 뉴델리에서 아그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을 때는 처음 인도에서 타본 기차였기 때문에 괜스레 긴장도 하고 주변을 경계하기 바빴지만 바라나시에서 가야를 향하는 기차의 좌석에 앉았을 때는 불안함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 그리고 마지막 기차라는 섭섭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보드가야는 불교 신앙의 중심지인만큼 거리 곳곳에서 사르나트보다 훨씬 더 많은 순례객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국가의 불교 사원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대개 이곳으로 순례를 하러 와서 숙소에서 머물며 사르나트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확실히 사르나트보다 더 많은 불교 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교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각국을 대표하는 사원들이 많았는데, 이곳에 있는 국제 사원 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곳은 태국 사원이었다. 태국 사원은 태국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해 질 녘에는 지붕의 금빛들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사원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화려한 사원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상은 사원이 주는 화려함과는 반대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에 화려한 사원을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게 만들어주면서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일본 불교단체가 세운 대불상(The Great Buddha Statue)이었다. 대불상은 높이가 25m가 되고, 12,000명의 석공들이 7년에 걸쳐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불상은 완성 이후 달라이 라마 14세가 축복해 주었어서 더 유명해졌다. 대불상을 멀리서 처음 보았을 때는 분명히 온화하게 앉아 계신 부처상이었지만 한 발자국씩 가까워질수록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압도되어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가르침을 주시는 부처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드가야에서는 반나절 정도 짧은 일정을 계획하였기 때문에 몇 군데를 둘러보지 않았는데도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시간이 늦기 전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나무가 있는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가 저문 시간의 사원에는 벌써 수많은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불교 신자들은 벌써부터 사원 주변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두 각자의 언어로 경전을 외우고 있었으며, 승려분들은 사원 안에서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관광객들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하는 순례자들을 보니, 괜스레 그들이 기도하는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사원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좀 더 일찍 왔다면 사원을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예불을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저녁 무렵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보드가야는 바라나시에서 콜카타(Kolkata)를 향하는 일정에서 반나절 정도만을 생각하고 넣은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볼 것이 많아서 넉넉히 시간을 넣지 못해 약간 후회했던 곳이었다. 특히나 마하보디 사원을 나올 때는 이곳을 좀 더 여유롭게 돌아보지 못한 부분이 제일 아쉬웠다. 그렇게 보드가야에서의 반나절에 대한 아쉬움은 밤과 함께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