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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장금 Jun 18. 2023

젊음과 낭만이 함께하는 도시, 타이중

심계신촌부터 고미습지까지

    6년 전만 해도 타이중의 버스요금은 모두에게 무료였다. 당시의 기억이 흐릿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지카드 (Easy Card)라는 대만의 교통카드조차 찍지 않고도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외국인을 대상으로는 해당 서비스가 종료되었고, 현재는 현지인 대상으로만 운행비를 무료로 적용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타이베이처럼 지하철 노선이 다양하지 않고, 비싼 택시비 때문에 뚜벅이 여행자들에게 버스는 여전히 필수적인 교통수단이었다.


    궁원안과에서 버스를 타고 30여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심계신촌 (Shenji New Village)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타이중 내에서 아기자기한 조그마한 상점들과 플리 마켓으로 유명한 곳으로 많은 젊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엽서, 향수, 패브릭 스티커 등 하나하나의 상점과 상점 바깥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소품들 앞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 역시 눈으로만 감상하지 못하고 타이베이 101과 타이동의 열기구 축제에서 보일법한 열기구 모양의 패브릭 스티커를 구매하고 말았다.

Copyright 2023. 농장금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심계신촌의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플리마켓은 눈은 즐거웠지만 입이 즐겁지는 못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던 태양이 오후 들어서는 더 강렬히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카페에서 버블티를 즐기려 하였지만 하필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여행을 왔었고, 우리가 가고자 했던 카페들은 이미 자리가 꽉 차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버블티의 원조인 춘수당 (Chun Shui Tang)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타이중이 좋은 점은 도로가 복잡하지 않고 일자로 뻗은 도로가 많기 때문에 거리를 걸으며 수시로 지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었다. 타이중 여행을 계획할 때는 춘수당의 본점에 방문해서 버블티를 마시는 것도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타이중에 도착하니 가고 싶은 곳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본점 방문은 다음으로 미루어두었다.


    사실 춘수당은 버블티만 파는 카페가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함께 파는 식당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에도 우육면이나 다른 음식을 드시고 계신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디저트 같은 음식과 함께 버블티를 주문할까도 잠깐 고민했지만 식사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곳의 버블티는 양이 많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온전히 버블티만을 즐기기로 결정하였다. 주문이 들어가고 얼마지 않아 나온 버블티의 식감은 우선 왜 춘수당이 버블티의 원조이고 아직도 사랑받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흔히 먹어본 버블티보다는 타피오카펄이 훨씬 작지만 더 쫄깃한 식감이 있었으며, 너무 과하게 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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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블티를 느긋하게 즐기다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급히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일몰의 시간이 가까워졌었다. 급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그랩앱을 켜서 택시 요금을 확인하였는데, 6만 원이 넘는 금액을 보고 조용히 앱을 닫으며 빠르게 주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고미습지 (Gaomei Wetland)에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청수 (Qing Shui) 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다시 택시를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 


    청수역은 6년 전, 고미습지를 찾았을 때 타이베이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탔던 곳이었다. 당시에 청수역에서 기차를 타지 못했으면 타이베이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렇다고 타이중에서 하루 머무를 방을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기차를 타야만 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버스 정류장부터 기차 승강장까지 숨이 턱 끝까지 탈 정도로 달려 겨우 기차를 탔던 젊은 날의 추억이 새겨진 곳이었기에 내심 반가웠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갈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때의 기차표를 지갑 한 켠에 넣어 놓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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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고미습지까지는 차로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충분히 습지 안에 들어가서 일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뿔싸! 다소 급하고 괴팍하게 택시를 몰던 기사님께서 멋지게 코너링을 하다가 그만 타이어가 펑크가 나버리고 말았다. 일몰은 이미 시작되었고, 타이어가 펑크가 난 곳에서 습지의 입구까지는 족히 20분은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기사님은 타이어가 터져버린 택시를 수습하는데 정신이 빠져,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까먹으신 채로 급히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시기 바쁘셨고, 우리는 우리대로 급하게 습지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습지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길에 바라보는 풍력발전기들과 조금씩 저물어가는 해를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천천히 걸어가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색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어쩌면 택시의 타이어에 펑크가 나지 않았다면,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길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보니, 이렇게 걸으며 낭만을 느끼는 것도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붉지는 않았던 태양과 그 주변 구름의 색들이 한참을 걸어 도착한 습지의 입구에서는 하루의 끝을 이렇게 보낼 수 없는 내 마음의 아쉬움을 대변하듯이 더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습지의 입구에서 다른 관광객들처럼 신발을 벗고 습지 안에 들어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발을 씻는 것도 귀찮았기 때문에 나무 덱에 가만히 서서 세상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을 감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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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이 너무 캄캄해지기 전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벼운 저녁을 먹기 위해 펑지아 (Feng Chia) 야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타이중을 대표하는 야시장이면서도 펑지아 대학교 옆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히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평일 저녁이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몇몇 맛집을 제외하고는 줄도 길지 않았고 한산해서 구경하기는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한참을 거리를 서성거리며 이곳저곳에서 음식들을 먹으며 돌아다니는 재미가 다할 무렵, 우리는 버스 정류장을 찾기로 했다. 구글에서는 버스가 곧 도착한다고 했기 때문에 먹던 음식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빠르게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타이중의 메인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는 한국처럼 전광판에 버스의 도착 시간을 알려주지만 골목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구글이 알려주는 시간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구글의 경우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졌고, 우리는 하염없이 취두부 냄새를 맡으며 20분 정도 더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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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중의 첫째 날은 이른 아침 타이베이역에서 부터 시작해서 펑지아 야시장까지 타이중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곳을 좀 더 천천히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오래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였다. 하지만 덕분에 이곳에서 낭만스럽고도 잊지 못할 하루라는 선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핸드폰에 저장된 낭만스러운 일몰의 사진을 다시금 감상하며, 조용히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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