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입시, 그건 산을 오르는 일이었습니다.

정상보다 더 소중했던 오르는 길의 순간들

by 농장금

환상의 나라 대학원의 입시 과정은 나에게 산을 오르는 등산같았다. 등산하기 전, 산을 고르기 위해서는 지도로 위치를 확인하고, 산의 경치와 난이도를 느낄 수 있는 사진과 후기를 보면서 대략적인 산행 일정을 짠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의 이면에는 몇 시간동안의 고된 산악행군이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후기도 꼼꼼하게 읽어 봐야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계절에 따라 산이 주는 색감과 느낌이 다르니 계절도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 그리고 나면, 산행의 묘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동행자가 있는지도 찾아봐야한다. 아무래도 비슷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같이 산행을 하기엔 가장 적합하다. 체력의 차이가 너무 심하면, 누구가에게는 산행은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가득한 여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정과 동행자가 어느정도 결정되면, 비로소 등산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는 끝.


내가 처음 준비한 대학원의 입시도 위의 등산을 준비하기 위한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이라는 산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학교들이 있고, 입시 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대학원의 동행자인 교수님들은 어떤 분들이 계시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알아봐야했다. 물론 이러한 정보들의 중요성은 대학원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것이라 다른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네이버와 구글에 '보건대학원'이 다섯글자만 쳐도 국내는 물론 심지어 해외에서도 공중보건학의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대학원들의 이름과 해당 대학원의 웹사이트 정보가 몇 페이지에 걸쳐서 나오기 때문에 어떤 산을 오를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에게는 지식에 대한 갈증은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공중보건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싶었고, 새로운 전문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었다. 그때 나는 대학원을 나의 지식을 채워줄 공간이자 나에게 새로운 진로의 기회를 열어줄 기회의 장으로만 생각했다. 당연히, 대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채워주는 공간이자 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하는 곳이 맞다. 적어도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는 나에게 학교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당시 나는 여전히 학부생의 관점으로만 대학교를 바라보았고, 대학원의 본질에 대해서는 깊게 탐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대학원 입시 과정 속에서는 정작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었다. 그건 바로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이었다.


언젠가 대학원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많은 학생들이 어떤 연구를 할지 밤낮의 고민 끝에, 매우 유의미한 주제이고 사회의 기여도도 높을 것 같다고 판단해서 본인에게 자랑스럽게 연구주제를 들고오지만, 해당 주제는 이미 다른 학자들이 연구했었던 주제이거나 그 내용이 너무 광범위해서 현실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그리고 그렇게 몇 번에 걸쳐 본인을 찾아와서 함께 논의하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야 학생들은 결국 자기만의 의미있는 연구 주제를 찾아가면서 지식 생산자로 성장해 나간다고. 하지만, 난 일반적으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어떤 연구를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을 전혀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게 맞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대학원 입시의 준비는 회사를 다니면서 병행하기엔 생각 이상으로 벅찬일이었다. 야근은 잦았고, 노을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급히 걸음을 옮겨도,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붉은 태양은 이미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없었다. 어두워진 하늘 아래, 어스름한 달빛과 희미한 별빛에게 마음 속으로 고요히 전하는 인사하는 일상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연구 주제를 끌어 내기 위해서는 마중물과 같은 기본 지식들이 필요했는데, 어떻게 기본 지식을 쌓아가야할지도 막막했고, 다가오는 원서 접수 마감일에 맞춰서는 도저히 의미있는 연구 주제는 커녕, 보건학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 너무나 자명했다. 그렇게 연구계획서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직장인이 연구 계획서를 쓰기 위한 배경 지식조차 없으니, 연구 계획서를 단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영국을 비롯해 영국 학사 시스템의 영향을 받은 일부 나라에는 1년짜리 코스워크 중심의 대학원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당 프로그램이야말로 학문에 대한 궁금증은 있지만 아직 연구자로서의 길이 확실하지 않았던 나에게 매우 적합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쉬운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생각해보니 쉬운길보다는 지름길이라 부르는게 맞았다. 가파른 길을 택하면 산 정상에 더 빨리 닿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고 지원서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리고 교수님께 나의 작은 바람이 전달되었는지, 지원서를 보내고 몇 주 뒤 인터뷰 요청 메일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가파른 지름길은 나를 조금 더 빠르게 정상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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