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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31. 2022

경험과 지혜---경험보다 이론이 더 중요하다?

경험과 지혜---경험보다 이론이 더 중요하다? 

2007년

 

회사생활에서의 경험이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많다. 이러한 경험의 가치를 가볍게 여

기는 것은 아무래도 경험의 가치를 잘 몰라서 하는 행동이거나, 직접 경험하지 않아 실감이 안 

나서 그러는 것 같다. 나는 회사생활 중 경험한 많은 기록을 정갈하게 정리해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의 경험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애를 많이 썼다. 


며칠 전 발전회사 전-현직 몇이 모인 저녁을 먹는 즐거운 자리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발전소에서는 경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론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짧은 몇 시간이기는 하지만 대학원에서 나의 강의를 받은 사람이 그 말을 했으니 말이다. 그 강의에서 나는 주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료를 만들어 가르쳤는데, 그와 그의 동료 학생들은 경험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교수들이 주로 가르치는 이론을 더 중시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걱정되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이론이 많이 약한 사람이라서, 강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경험에는 이론이 안 들었나?”하고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도, 경험은 소용없는 일이 아니다, 경험도 중요하다, 경험에도 많은 이론이 들어있다, 뭐 그런 생각을 합리화시키려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발전기술에서 그리고 발전소 현장에서, 나는 학교에서 배운 기본적인 이론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 사람과는 반대로, 이론이 중요한 것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가 한 모든 일들이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는 있지마는, 에너지 제1법칙이니 그런 것들이 실무현장에서는 어떤 문제를 일으켜서 이슈화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달라졌다. 지금은 눈만 깜박거려도 휴대폰이 동작하는, 다시 말해서, 눈 깜박거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아주 작은 데도 휴대폰은 움직이는, 입력은 작아도 출력은 큰, 무언가 에너지 불멸의 법칙이 한계를 이탈(?)하는 시대다. 

물론 “눈을 깜박거릴 사람을 만들기까지 들어간 에너지가 얼마냐?”고 물을 지 모르지만, 아무튼 미동에도 기기가 작동하는 시대다.  

한 잔의 와인을 마신 시인이 아름답고 위대한 시 한 편을 쓰고, 그 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창의시대다. 별 힘도 없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 대단한 발명을 하여 어마어마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세상인데, 그 ‘에너지 법칙’ 같은 것은 마치 인간사로 치면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저 보편적인 진리 아닌가?


과학적 계산 에너지와 철학적 사고 에너지는 경계가 희미해졌다.  


그러나 며칠을 생각해 봐도 이 문제는 쉽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발전소 기술에는 많은 이론이 필요하여, 특히 설계를 할 때는 이론 아니면 무엇으로 설계를 하겠는가 마는, 그 설계도 그리고 특히 운전과 보수는 설계만으로는 부족한 면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거대한 발전소 보일러를 설계한다고 하자. 운전과 보수를 모르는 설계원이 단지 공학적 이론만으로 설계할 수는 ‘없다’고 나는 내 경험 상 단언하고 싶다. 

이론이 밝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보일러 CFD를 그려보고, 모델 테스트를 하면서 자신의 연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며, 심지어는 보일러 제작사도 시험 연소로를 만들고, 버너 시험장치를 만들어서 시험해 보지만, 경험도 무척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내가 볼 때, 그 시험들은 단지 보일러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들을 제공하는 것이지, 실기(實機)에서 운전할 때 일어나는 보일러 계통 전체의 특수한 현상이나 문제점을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보일러 제작사가 작은 시험 연소로에서 아주 짧은 기간 시험해서 얻는 정보는 실제 보일러가 장기운전에서 나타나는 묘한 현상에 대해서 알려줄 도리가 없으며, 버너 시험장치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버너를 겨우 달랑 한 개 설치하는 버너 시험장치에서 얻는 정보는 실제 보일러에서 여러 버너를 동시 운전할 때 나타나는 복잡한 조화와는 거리가 무척 멀다. 


내 경험에 따른 판단으로는 그것은 ‘깡통 보일러’일 뿐이다.

경험은 이미 그런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론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텐가?

“왜 하필 보일러를 예로 들었냐?”고 물을지 모르나, 다른 것들도 다 같은 이치다. 

경험이 이론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을지는 몰라도, ‘덜’ 중요하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 나는 남에게 지는 연습, 져주는 연습을 좀 하고는 있는데, 그래서 그 말을 한 사람에게 꼭 이겨보려고 이러는 건 아니나, 경험이 무시당하면 그것은 옳은 일은 아니다. 

아울러 경험에도 엄청난 이론이 들어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해야 하겠다.

“그 많은 귀한 경험들이 얻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이론의 실패와 부족함이 있었겠는가?”를 생각하기를 권한다.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이론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닐진대, 이론과 경험이 어우러져야만 좋은 발전소가 만들어지고 운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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