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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염소 엄마

염소 엄마

   2004


요즘 TV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가 나오는데 주로 동물과 사람 사이가 아주 친한 이야기들이 많다. 나도 염소 엄마였던 적이 있어서 그 웃지 못할 해프닝을 적는다.

 2001년1월. 충남 태안의 태안화력발전소. 사무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바로 100미터 앞에 작은 산이 있고, 흙을 파다 쓰느라 깎아지른 경사면에 풀을 파랗게 심어 놓았는데, 거기 회사에서 놓아 기르는 염소 떼가 있어 나는 가끔 그들을 바라보며 유유자적 풀을 뜯는 모습에서 평화를 느끼곤 하였다.

 어느 날, 현장에 다녀오던 길에 염소 울음이 들려 반사적으로 그 쪽을 얼핏 보니 염소 한 마리가 막 미끄러져 처박히는 게 아닌가! 빗물 내려가라고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급경사 도랑으로 말이다. 유치원 애기들 썰매타는 기분이라면 좀 좋겠냐마는, 그게 아니라 사고인 것 같아서 얼른 그 쪽으로 쫓아가서 살펴보니 아뿔싸! 콘크리트 배수로 물 고이는 웅덩이에 빠져 있었다.

기어올라올 수 없는 곳에 빠졌는데도 녀석은 울면서 구조를 요청하지도 않고 웅덩이 주위에 있는 풀이나 뜯고 있었다. 참 한가한 건지 한심한 건지!

“천지를 모르는 천치같은 것이 처먹기는 잘도 처먹는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은 것 같구먼....”.

나는 중얼거리며, “이런 녀석은 ‘먹는다’보다는 ‘처먹는다’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무지몽매한 그 놈에게 쯪쯪 혀를 찼다.

그렇게 내가 염소의 목숨을 건져준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아무리 봐도 염소 숫자가 확연히 줄어 보였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염소 두 마리가 산 위에 있는 샘에 빠져 죽었단다. 얼음 언 줄 모르고 거길 지나다가 발이 빠져 그만 나오지 못해 얼어 죽은 것 같다는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살펴보지도 않고 나다니다 죽다니 아이고 멍청한 짐승같은 놈들....”. 나는 녀석들의 바보같은 짓거리에 욕을 퍼부었다. 아내에게 운전 가르칠 때 잘못하면 마구 욕하는 심정으로.

 태안의 겨울은 눈이 많다. 많이는 안 와도 조금씩 자주 내린다. 그 눈보라치던 그 날.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염소들은 얼마나 추울까 걱정하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 추운 산에서 염소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사무 좀 보다가 또 내다보니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전에 사고로 벼랑에 미끄러지던 염소도 내 눈에는 포착되지 않았남! 

아! 내 눈은 틀림없어. 저 녀석 어디 다리가 부러져서 옴짝달싹 못하는 게 뻔해. 그렇게 생각한 나는 녀석을 구해주러 급히 산으로 올라갔다.

얼만큼 다가가니 다리가 부러진 건 아니고 멀쩡히 일어나서 나를 경계하는 듯하더니, 가까이 가자 차츰 피하기 시작했는데 아니! 그 옆에 갓 난 새끼 두 마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한 마리는 걸어 다니고 한 마리는 약해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여 비실거리고, 태반도 널려 있고, 어미 몸에는 출산의 흔적이 털에 묻어 너덜거리는데, 녀석은 지저분하게 그걸 씻지도 않고 엉덩이 쪽에 달고 있었다.


“이 눈보라치는데 여기다 새끼를 낳다니 얼어 죽일려고 이 산 위에 싸질러? 이 미련한 놈아 도대체 여기가 어딘데, 북풍한설 몰아치는 북향 법면에서....”.

나는 욕을 퍼부으며 새끼들을 안고 따뜻한 방으로 데리고 내려가려 하는데, 어미는 마구 소리쳐 울며 좀 따라오더니 더 이상 따라오지 않으려 했다. 어미가 없으면 어찌 키우랴! 내가 마음이 급해져서 사람들을 동원해 달아나는 어미를 억지로 포획해서, 껴안지도 못하고 덜렁 쳐들지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뿔을 잡고 질질 끌다시피 데려다 라디에이터가 있는 따끈한 창고 한 켠에 넣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벌어졌으니, 어미가 새끼를 돌보지 않는 것이다. 너무 놀랐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좀 기다려 봐도 마찬가지. 도무지 새끼에게 젖을 안 주고, 새끼를 가까이 데려다 주면 뿔로 밀어내기만 하니, “염소는 왜 암컷에도 뿔이 나가지고 저러는지, 미련한 짐승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그 엄마 염소는 도로 방목시키고.


결국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나자 비실거리던 녀석은 죽고, 나머지 한 놈도 젖을 못 먹으니, 하는 수 없이 우유를 사다 그릇에 담아 주었는데 그래도 안 먹는다. 머리를 써서, 애기 젖병을 사다가 따끈하게 뎁혀 주니 한 통을 쭐쭐쭐쭐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다. 옳다꾸나! 이러면 되는 것을!

그렇게 젖병 빨려가며 키우기 시작하였는데, 때로 몸이 안 좋아 보일 때는 동물병원에도 데려가 주사도 맞혔다. 그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우유 사다 먹이고 일요일에는 당직자들에게 우유를 챙겨 먹이게 하는 소동을 벌였다.

얼마 지나니 이제 녀석은 사람만 보면 그가 나건 누구이건 도망가는 게 아니라 쫄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차츰 귀여운 애완동물이 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시작하자 “짜식 뭐 아무나 엄만 줄 아나?” 나는 녀석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따라가면 사람도 구별하지 못하는 우매한 짐승이라고 말하면서도 독점하지 못해 약간의 질투도 했다.

3층 사무실로 올라오면 종종걸음으로 따라 올라온다. 녀석은 발가락이 두 개밖에 안 되는데다가 그나마 발바닥이 딱딱하니 매끄러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자빠지기도 하면서 무척 미끄러워했다.


화장실 가면 주책없이 거기도 따라온다. 

“짜식 어디 어른의 중요한 거시기 훔쳐보려고...”.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발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이내 졸고 만다. 내가 일어나면 바스락거리는 발소리에도 번쩍 잠에서 깨어 황급히 따라 일어난다. 사무실에 깔려있는 카펫에 오줌도 갈겨놓고, 환약같은 똥은 못 만들고 물똥을 싸기도 했다.

그래도 얼마나 귀여운지 나는 이따금 아래층에 내려갈 때나 다른 사무실에 갈 때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내가 동물애호가요 녀석의 생명의 은인이나 되는 것처럼 뻐기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직원들도 사람을 따라다니는 염소를 보고 굉장히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사람을 따르게 만든 것에 대해 나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르르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어느 정도 튼튼해지자 회사 동물원으로 쓰던 빈 우리에 넣고 우유도 먹이면서 한 편으로 풀 뜯는 연습도 시켰는데 녀석은 그저 사람만 다가가면 따라오려 안달이었다. 점차 풀을 잘 뜯게 되자 녀석을 앞 산 염소들이 있는 울타리 속으로 갖다 넣었다. 그런데 문을 잠그고 돌아서면 “애애애애” 울면서 어느 새 울타리 밑 틈새로 빠져나와 따라온다. 할 수 없이 목에 고삐를 해서 붙들어 매 놓으니 또 “애애애애” 울다가 지쳤는지 체념했는지 풀을 뜯었다. 

“배고프면 뜯게 되는 거지. 지깐 놈이...”.

나는 정을 떼려는 단호한 의지로 녀석을 제 삶의 터로 돌려보내는 훈련을 계속했다. 녀석이 낮잠을 자는지 어디 아픈지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생사를 확인할 겸 또 위치를 파악하려면 사무실 쪽에서 “에헤헹헹”하고 염소소리를 질러본다.

녀석은 번개같이 알아차리고 지놈도 똑같이 “에헤에헹”하고 소리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뛰어오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고삐 때문에 어쩌지를 못한다. 불쌍해서 또 우유를 갖다 먹여주기도 했다.


염소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게 된 것을 사람들은 다 나의 덕이라고 추어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에헤에헹”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 나를 ‘염소 엄마’라 불렀다. 

그러던 중 나는 서울로 전근되었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태안으로 내려왔는데, 어떤 사람은 “염소 엄마 다시 왔다”고 하면서 “그 때처럼 염소 소리 내서 한 번 불러보라”고도 말했다.

내가 서울 간 사이,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녀석이 점차 야성 아니지 본성을 되찾아 가도록 노력했단다. 처음에는 고삐를 풀어놓으니 혼자 왕따 당해서 외로이 혼자 지내더니 차츰 융화가 되었다고. 이제는 어느 놈인지 구별도 할 수 없고 무리를 향해 “에헤헹헹”해 봤자 어느 녀석도 콧방귀를 안 뀐다. 염소 무리는 다같이 그 소리를 듣고 이 쪽을 쳐다는 보지만, 곧 고개를 돌려 제 갈 길을 간다.

“별 희햔한 인간도 다 있네”라는 듯.


나는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련다.

실은 그 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무지막지한 짓을 염소에게 했는지 뉘우친 바 있다. 내가 회사에서는 ‘지식경영’을 하자는 논문도 쓰고 나름대로 강의도 하는데, 염소세계에서는 내가 ‘무식경영’을 했음을 고백한다. 나 때문에 그 염소 엄마와 새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심지어는 그들이 모자간이라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게 만들었음을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애호가로 비쳐졌지만, 그것이 얼마나 야만적인 행동이었는지 홀로 탄식했던 일을 털어놓는다.

 “엄마가 곁에 있는 한 어떤 추위도 검은 모피 입은 갓난 염소를 얼리지는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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