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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팥쥐 엄마

팥쥐 엄마

   2003. 9.12


추석을 하루 넘겼는데 썰렁하기만 하였다. 올 추석은 유난히 날씨도 꾸꾸무리하고, 딱히 집에서 할 일도 없고 해서 텔레비전 앞에 드러누워 ‘팥쥐 엄마’라는 드라마를 구경했다.

마누씨(마누라라는 좀 시장판같은 호칭에 대해 애칭으로 내가 지은 말이며, 몇몇 친구들이 아내를 존중하자는 의미로 같이 사용하는 단어임)와 함께 오순도순- 정말이지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서로 다른 채널로 바꾸자고 다투지 않았으니까 오붓하게- 1부와 2부를 잘 본 셈이다. 


  오랜만에 이 드라마가 우리 부부의 마음을 가슴 뭉클하게 만들어 주었으니 고맙다 드라마야. 나는 또 여느 감동적인 드라마만큼 눈물을 몇 번 흘리면서 봤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두 아이가 있는 이혼한 남자가 있는데, 그를 너무 좋아해서 새 엄마(아이들은 ‘팥쥐 엄마’라 부른다)가 된 여자가 겪는 얘기로, 결혼한지 얼마 아니 되어 아이들이 아줌마라 부르면서 웬쑤처럼 여긴다. 그런데 글쎄 그 사랑 때문에 결혼한 남편이 덜컥 죽어버리고 말았어요! 

 유언에 따라 아이들에게 20억 원 재산이 돌아가는데, 이 돈을 탐낸 사업하는 전처가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아가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새엄마는 결국, 자기를 엄마로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아이들과 정을 떼고 마는 데, 새 엄마(개그맨 박미선 분)의 가슴 아린 연기는 일품이었다.

 박미선은 코 옆 8자 주름 얼굴로 밉게(?) 우는 모습으로 째질대로 째지고 배신감으로 절망한 가슴을 잘 나타냈다. 그게 얼마나 실감났던지 나도 소리 없이 눈물을 많이 흘렸다. 

얼마 후에 친 엄마에게로 갔던 아이들이 집으로 되돌아와서 그만 또 울었지만, 다시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던 박미선이 그 맹세를 깨는 장면도 참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요즘 우리나라 TV드라마가 몇 사람의 등장인물들 간에 두 세 가족 간에 꼬리에 꼬리를 물거나, 지그재그로 요상한 인과관계를 설정하여 너무 조잡한 조작으로 억지로 뭔가를 보여주려 하며, 소재가 빈약하여 무슨 불륜, 기억상실, 난데없이 나타나는 피붙이 뭐 그런 것에 식상한데 비해, 그래서 방송 드라마의 둘레가 아주 좁게 느껴지는데 비해, 팥쥐 엄마는 아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내용을 가지고도 극적인 효과를 잘 거둬들였다.

 이건 영토가 광활한 드라마였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훌륭한 작가의 좋은 작품이라 생각된다. 거기에 박미선의 연기가 더욱 실감나게 받쳐주었다. 남편을 너무 좋아한 죄로, 그리고 남편이 죽기 전에 “당신을 믿는다” 고 한 그 말 때문에, 거기에 착한 모성애가 우러나서, 몸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직접 낳은 엄마보다 더 아이들을 ‘잘 거둔 것’이 결국 아이들을 되돌아오게 만들었고, 친 엄마까지도 무릎을 꿇고 양육을 간청하게끔 만든다.

잘 거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사람답고 인정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제 잘난 척하는 인간들이 가져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눈물이 계속 나오게 만드는 숙연한 현실 얘기였지만, 기왕에 개그맨이 주인공을 했으니, 개그적인 발상으로 이 숙연함을 좀 깨 보려 한다.

즉, 내가 마누씨하고 일찍 헤어지지 않았으니 말이지, 그리고 내가 새 장가 들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랬더라면 아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런데 마누씨가 만약 전처가 아니고 새 마누씨인데 내가 일찍 죽었다면, 마누씨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분명 박미선처럼 대해 줬을 거야. 암 그러니 난 이런 마누씨하고 살고 있으니 다행이지 뭐. 암 암.

 또 하나 아, 내가 20억 원이나 되는 유산을 남길 수 없으니 다행이지, 난 그런 의미에서는 가정분란을 막아 준 셈이야. 


엄숙한 감상에, 자유로운 상상에, 다행 범벅인 망상을 하게 만든 드라마를 보고 나니 올 추석이 그다지 썰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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