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취화선’---장승업과 임권택의 예술혼

취화선’---장승업과 임권택의 예술혼

   2002

영화의 주인공이 큰 떡 조각을 입에 틀어막고, 마치 무슨 볼일 보러 가는 양 미련 없이 불가마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니, “도자기는 불이 말해준다”는, 조금 전에 도공과 대화했던 것처럼, 자신을 태워 작은 불로 보탬이 되면서 ‘영원한 名品 도자기’를 남기는 클라이맥스는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취화선'으로 임권택 감독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은 것을 한국인으로서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 큰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를 확인시켜 주었고, 우리 문화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성과를 올렸다. 

 우리나라에 천재 화가가 있었다는 단순 사실 말고도, 한국화라는 독립된 화풍(畵風)이 세계문화계에 새롭게 알려졌을 것이고, 그 시대에도 그림을 아는 높은 식견의 문화가 조선에 자리했다는 것도 세계인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을 것 같다.

장승업이 일가를 이루는 화가가 되기까지, “독자적인 그림세계를 이루어야 한다”거나, “붓보다 먼저 뜻을 세우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었는데, 이 영화를 본 나는 과연 이 나이에 후배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러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 지금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장승업이 그러한 자각을 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항상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못 이룬다’ 든지, 그린 그림이 성이 차지 않아 구겨버린 종이더미에 파묻힌 화가의 모습은 진정한 전문가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나 자신 기술자의 한 사람으로 장인정신(匠人精神)을 가다듬게 한다. 

나를 어떻게 단련시켜 더욱 새로워질 것인지를 고뇌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개 환쟁이 출신이 이미 장안에서 인기 높은 '화가 장승업'이 되었는데, 무슨 더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 하느냐고 주변에서 말하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선경(仙境)에서 실경(實景)으로, 즉 중국화의 모방에서 이 땅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게 되는 과정, “죽어 있는 돌맹이는 영원히 붓에 담을 수 없다”는 무생물에서 생명을 끌어내는 정신은 장승업의 예술정신을 잘 나타내 주었다.

  그리고 당장 헤어질 ‘기집년’(영화에서 나온 대사대로 옮긴 것으로 장승업의 애인을 말함)이나 제자 놈에게도 혼을 다해 그림을 그려주는 모습이 참으로 그를 잘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아량과 인간성은 과연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역시 전문가는 어떤 경우에도 전문가답게 처신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원세개에게 바칠 그림 그리기도 마다하고 뛰쳐나온 화가라는 것을 알아주는 멋쟁이 풍류 기생이, 떼 새 그림의 의미까지도 읽으니 어찌 사나이 가슴에 불이 댕기지 않으리!

장승업의 사랑과 사람과 예술이 열매를 맺었어야 하는데, 아아 너무나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임권택감독은 화가의 사랑 장면을 표현할 때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시켰다. 밖에다(?) 씨를 뚝뚝 떨구게 하여, 조선 예술혼의 씨(자손)가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 몹시 야속하다.

  영화는, 장승업이 단소를 불게 하여 우리 전래의 소리를 들려주고, 이따금 창(唱)으로 우리의 풍류를 보여주고, 초례(醮禮)로 전통문화를 보여주고, 기와집이나 궁궐 모습으로 우리 고유의 건축미를, 넉넉함과 너그러움의 못난 도자기로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애를 썼다. 너무 많이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닌지 약간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갈대밭의 정사 신은 그렇다지만, 씨를 받으려던 격정의 장면은 약간 빗나간 것 같이 느껴진다.


  우리가 임감독의 큰 상 받음을 축하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장승업처첨 영화예술에 일가를 이루어 전 세계가 공인하는 자격과 영예를 얻음으로써 한국민의 예술혼을 인정받음과 다름없어 덩달아 기분 좋기 때문이다. 

연로한 감독이 나이 들수록 맛을 더해가는 포도주처럼, 경지를 이루고 있음을 높이 우르른다.

영화감독 임권택 그가 100여 년 전의 장승업을 부활시킨 영화였다.

작가의 이전글 목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