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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목걸이

목걸이

1997


여인들이 하고 있는 목걸이를 유심히 보기시작한지 한 삼 년이 되었나 보다. 

명철은 그간 삼십대 후반 여자들의 목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마음에 드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이중 촬영하듯 그 사람 얼굴에 아내의 모습을 겹쳐서 떠올려보곤 하였다. 

도대체 목걸이 같은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왜 차고 다닐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의 가치관이 이 삼 년여 동안에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명철의 성장과정에서 주위 여자들은 모두 논밭 매고 땔나무 하러 다녔으니 반지나 목걸이 한 여자는 사회의 기생충같이, 몸가짐이 바르지 못한 여자같이, 병약한 귀족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남자 못지않게 큰 아름으로 통나무 듬성듬성 박힌 나뭇단을 이고도 바람이 일도록 휑하니 걸어가는 건장한 여자, 모를 심어도 밭을 매도 남보다 먼저 제 몫을 해치우는 일 잘하는 여자만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섬세하고 사랑받으려는 여심과는 먼 거리에서 무조건 헌신하고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여자인 것으로 생각이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서서히 장신구가 여인들의 아름다움과 품위와 여자 다움의 필요조건으로 인정되어 가는 심리변화를 겪은 뒤, 결국 한 보름 전에는 중대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경순씨 당신 목걸이 하나 해요”

보통 때는 부르지 않는 아내의 이름을 부른 것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공식선언을 할 때 ‘국민 여러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어서였다. 멀쩡한 한밤중에 애기 젖 물리고 잠을 청하다 말고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경순은 몸을 일으키더니, 네 발로 기어서 둘 사이에 누워 막 잠든 애기를 타넘어 남편 곁으로 바싹 다가앉는다.

“지금 당신 뭐라 하셨나요?”

“이 사람 잠자다 말고 왜 이래? 목걸이 하라 했지 뭐라 하긴 뭐라 해!”

묻는 사람은 아닌 밤의 홍두깨라는데, 답하는 사람은 해탈의 경지였으니, 경순은 어이가 없는지 남편의 어깨를 들춰 일으키며 진의를 다그쳐 묻는다.

“어머 이 이가 어디 잘못 되셨나?”

“나? 멀쩡해요. 당신 십오 년 전에 일년도 채 안된 결혼 목걸이 팔아서 시부모님 여행가시는데 보탰잖아? 이제 목걸이 하나 하시라는 그 말씀 아닙니까!”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순은 감격하여 뚜둑뚜둑 여름 가뭄에 소나기 듣듯 눈물을 흘린다.

이 모습을 보자 명철은 자신이 너무 멋없는 남편이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찡함을 느낀다. 목걸이 하나 사라는데 저토록 감격스러워하다니, 그 동안 너무 미안했다는 생각으로 위로랍시고 한마디 덧붙인다.

“그깐 놈의 목걸이 한 열 돈쯤 하라구!”

그러나 경순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전 당신이 사라는 목걸이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예요. 왜 지금까지 진작 좀 그런 식으로 여자한테 마음 써 주시지 못했어요?” 하고 또렷하게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그러나 그 한 마디로 모든 원망을 거둬들인다는 듯 대답하였다.

갑자기 명철에게는 도로주행 때 양 옆 가로수가 와락 다가왔다가 휘익 뒤로 사라지는 것같이 지난날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남편에게 투정도 하지 않고 오랜 세월의 인종을 기쁨의 눈물로써 거둬들이려는 경순의 가볍게 흔들리는 어깨너머에서 지난 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참 지지리도 못살던 지난 날이었어. 월급 타 봤자 사글세 빌어 쓴 돈 이자 주고 외상값 갚고 나면 당장에 또다시 외상 인생이던 시절, 고향 동네 어르신들이 단체로 여행을 가시는데 우리 부모님만 못 가시게 되었으니, 나도 모르게 결혼 목걸이 팔아서 여행 보내드렸지. 

명철은 아내에게 목걸이 사라고 말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걸 결심하는데 십오년씩이나 걸리다니 후회스럽기조차 하였다.


그 동안 살펴본 여인들의 목에서 목걸이 없는 여자는 꼭 고삐 없는 송아지 같기도 했고, 외출하면서 목걸이 챙기는 것을 잊어버린 주의력이 부족한 여자로 보이기도 했고, 스타킹 벗은 다리 마냥 긴장이 풀려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런 썰렁한 목으로 다른 여자들의 따뜻한 목을 부러워했을 아내를 생각하니 무척 미안했고, 목걸이 하나쯤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후에도 그거 사달라고 조른 적도 없으며, 남편의 때늦은 허락에 저리도 고마워하는 아내에게서 명철은 또 한 번 착한 여인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십오 년의 시간은 바로 자신의 희생이나 헌신을 내세우지 않는 아내에게서 ‘무조건의 또 다른 나’가 되어주기를 바라다가, 어렵게 어렵게 ‘업어줘야 할 아내’라는 것을 깨우친 시기였다는 것이 바른 설명일 것이다.

그 오랜 성장기의 딱딱하게 굳은 관념이 풍화작용으로 푸석푸석해지는 데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바로 경순의 한없이 베푸는 마음이 바로 바람과 비로 작용하여 명철의 굳은 마음을 조금씩 깨뜨림으로써 그로 하여금 사랑받아야 할 아내로 그 가치를 인정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억센 아름다움이나 무조건 헌신하는 미덕과는 독립된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대접받아 마땅한 가치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서로의 깊은 마음이 전달된 이날 이후의 가장 큰 변화는 여태까지 없던 경순의 콧노래가 설거지 도중에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명철은 퇴근하면 먼저 아내의 목부터 쳐다보며 그 목에 걸려있을 금빛 찬란한 목걸이를 찾아 눈길을 모았으나 “왜 오늘도 목걸이 안 샀느냐”는 질문만 해야 했고, 그 때마다 “그 말씀 듣기만해도 즐겁다”는 표정으로 경순은 웃음으로만 대할 뿐이었다.

그런 날이 보름 정도 지난 어제 저녁에야 비로소 명철은 자신이 왜 그렇게 바보스러운 사람인가를 알아차렸다. 아무리 월급이 은행으로 자동 입금되어 몽땅 아내 손에서 사용된다 해도 그렇지, 죽었다 깨도 자기 손으로 목걸이를 사 걸고 들어올 여자가 아니란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이거야 말로 첫날밤 신랑의 손길이 필요한 신부의 옷처럼, 비록 벗기는 것과 거는 것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남편이 사다가 아내의 목에 걸어주면서 사랑스러운 포옹이라도 해줘야 제격이 아니던가!

“내일은 내 반드시 퇴근 후에 보석상에 다녀와야지…”.

그렇게 단단히 다짐하였다. 내일을 생각하면 그간의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갚을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았고 그래서 아늑하고 풍성한 저녁식사 후의 차 맛은 예전보다 더욱 좋았다.


석간을 읽으면서 간간이 설거지 도중의 아내의 콧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있을 때 명철은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애비야 언나들 잘 있재? ……략……그리고 고맙다. 할망이 하고 너 아부지 하고 마카 석 돈씩 했다. 딴 데 쓰지 말고 꼭 금반지하라고 애미가 송금하면서 펜지에다 신신당부해서……”.

갈퀴같은 할머니 손, 고무래같은 어머니 손 그리고 쇠스랑같은 아버지 손…. 그 험한 손가락에 평생처럼 껴보는 금반지를 만져보고 또 만져보다가 농사일에 닳을까 봐 제대로 끼지도 못하고 도로 빼서 아껴두실 노인들을 떠올리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또 한 번 남편 몰래 일을 저지른 아내의 밉지만 고운 짓을 어찌해야 좋을지 망설이던 나머지 반 어거지로 고함 비슷하게 한마디 울린다.

“왜 또 엉뚱한 짓을 한 거야?”

경순은 놀라지도 않고 대답하였다.

“저는요, 목걸이 안 해도 돼요. 목걸이 없다고 주인 없는 강아진 아니예요. 제 목엔 언제나 당신이 주인이라는 목걸이가 씌워져 있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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