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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한기를 느낄 만한 선지자 최한기

한기를 느낄 만한 선지자 최한기

  2016


정신이 번쩍 드는 강의를 듣고 한기를 느끼고 있다. 조선조인 1800년대를 산 선지자 최한기에 대한 김용옥 교수의 TV강의는 "이야! 이런 선지자도 우리나라에 있었구나!" 하고 감탄에 탄복에 전율마저 느꼈다.

오늘을 사는 많은 석학들이 무슨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면 으레 미국의 아무개나 중국의 아무개가 이러이러한 말을 했다고 인용부터 하고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는 무척 싫어한다.

그것이 유식함을 나타내려는 방편으로 쓰이기야 했겠는가 마는, 우리나라에는 왜 위대한 문화와 先人이 없어서 허구한 날 남의 나라 사람 얘기만 끌어 대는지 나로서는 심히 불만이기도 하지만, 불만 이전에 의아스러운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생전에 600여권의 저술을 했다는 다산 정약용같이 역사적으로 대단한 저술가도 중국의 글이나 선대의 글을 번역 또는 재해석하는 정도에 그친 경우가 많았지만, 최한기는 자기 스스로 깨우친 것을 저술하였다(김용옥 교수의 말)고 하니, 그 내용도, 김교수도 놀랄 만한 위대한 이치를 담고 있다 하니 이 어찌 한기를 느끼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도 분명 강의나 칼럼에 인용할 만한 선지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강의를 듣고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그가 쓴 책에서의 위대한 이치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물의 이치를 알면 신(神) 즉 하느님은 없다는 것이다. 잘 모르면 광신(狂信)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모름지기 남의 위에 지도자로 있는 사람은 남에게 나의 종교를 나타내지 말라고 했단다. 

또 있다. 성경(聖經. 당시의 유교경전을 일컫는 어휘)을 읽지 말고, 자연의 이치를 적은 책(당시 앞서 있었던 서양의 과학적 서적)을 읽으라 했단다.


김교수도 노자사상을 위시한 중국고전에 탐닉해 있었는데 이제 國學에 눈을 돌렸다. 1857년에 최한기가 쓴 『기학氣學』이라는 책을 그가 번역했는데, 측인(測人), 교(敎)인, 선(選)인, 용(用)인의 순서로 사람을 기르고 뽑아 쓰는 이치도 명쾌하게 일러준단다.

또 화물아(和物我), 통천인(通天人), 합내외(合內外), 일정조(一精粗)라는 ‘기(氣)의 운화(運和)’로 일어나는 세상만물의 이치를 갈파하고 설파하는데, 그의 이런 생각은 독창적으로 깨우친 지식이라는 것.

마지막 줄에는 이 책을 잘 읽고 험기학(驗氣學) 즉 “기를 잘 깨우치라”는 말로 끝맺음했단다.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나도, 종교를 대하는 데 있어서, 처음에는 무조건 믿는 맹신에서 출발하더라도, 나중에는 정신을 잃어버리는 광신의 지경에 빠지지 않을 것을 말하고 있고, 또 종교를 가진 사람이 타 종교를 무조건 배척하는 행위가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전쟁을 일으켰음을 싫어했고, 내 종교를 겉으로 너무 드러냄으로써 타인이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등의 일을 자제할 것을 주장하는 등, 비교적 옳은 종교관을 가지고 살았음을, 김교수의 복합적 종교상태(머리는 불교요, 복장은 유교요, 실제는 기독교인)를 통하여, 그리고 최한기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무엇보다 내가 남의 글을 그대로 옮겨 놓는 일보다는, 가끔 내 스스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도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곧 『氣學』을 사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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