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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영화감상문] 황진이

[영화감상문] 황진이

2007.1.1


화려한 몸치장을 한 황진이가 저자거리에서 최고의 춤사위를 과시하며 평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광경을 본 화담 서경덕의 말 한 마디가 진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천하제일 명기라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창기로구먼....". 


자존심 상한 진이는 화담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저들(관중)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냐?”는 화담에게, 진이는 “춤을 보는 안목에 신분은 상관없지 않냐?”는 논리로 반박했다. 

이에 화담 은 “아직 지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른다, 누가 너 같은 천치한테 천하명기 라는 가당찮은 이름을 붙여줬냐?”고 독설을 퍼부었다.

화담의 말을 되새기던 진이는 비로소 관중들이 즐거워한 것은 그녀의 춤이 아닌 자신의 화려한 용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이번에는 허름한 옷을 입고 탈을 쓴 채 똑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허나, 하나 둘 모이던 사람들은 금세 관심을 거두고 그녀를 지나쳐갔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참담함으로 굳어지는 황진이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져갔다. 


이어 장면이 바뀌어, 행수기생을 뽑는 경연이 벌어지는데, 평생을 경쟁하던 라이벌 두 사람 중 황진이는 족보에 없는 민중의 춤을 ‘기적(妓籍)을 걸고’ 선보여, 어깨가 절로 들썩여지는 신명나는 춤을 춤으로써 마치 행수자리를 차지하는 듯하지만, ‘격식으로 사는 행수보다는 춤꾼으로 살아갈’ 진이를 위해 행수자리는 경쟁자에게 돌아간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노 행수의 생각이 이 드라마의 반전이었다.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진정한 가르침을 요청했다. 이에 화담은 지다 만 국화 꽃이 물을 머금자 다시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깨달음을 얻은 황진이는 “가진 재주를 베풀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사람들의 삶을 담겠다”며 “마른 국화가 물을 머금고 다시 태어나듯 사람 사는 모습이 내 안에서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

“꽃이 핀 차도 사람이 마시지 않으면 덧없듯, 내 춤이 세상에 쓰이는 그 날이 있기를 바란다”

는 글을 남긴 채 민중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마음을 직접 경험한다.


이제 결론. 

드라마 황진이는 끊임없는 노력과 연마만이 최고의 자리로 인도한다는 보편 진리를 보여주면서, 그 끝에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남을 위한 기예에서, 진정한 예(藝)를 깨우치는 길을 제시했다. 

또 매우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재주로 남에게 베풀겠다는 우월적 자세에서, '내 재주에 남을 담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가질 것을 가르쳐주었다. 

도를 지키는 기녀의 길에서, 도를 넘는 예인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아성취에서 자아초월의 길을 걸은 황진이였다. 

이리하여 황진이는 현역보다 더 훌륭한 은퇴 후를 살게 되었다.




황진이에게 고백하다


나 이제 그대를 맞을 테요

벽계수되어 그대를 맞으리요

계급장 떼고 윗도리 벗고

넥타이 풀고 맨살로 그대를 맞으리요

세상 속 황진이 그대와 함께

천상의 소리를 만들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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