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0. 2022

봉선의 사진

봉선의 사진

2009


최근에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7’을 출시하였는데, 그 한국 테마(흔히들 ‘바탕화면’이라고 부르는 화면 배경사진) 중에 친구 봉선의 사진이 들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도 매우 좋고, MS사도 사진을 선정하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진작 그의 사진을 뽑아 쓰지 않고 그 동안 도무지 누구 사진을 쓰고 있었다는 건가!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윈도우 테마화면에 대해 그다지 만족하지 않는다. 시원한 하늘과 초원은 좋다. 그렇지만 어디 나무도 한 그루 시선을 끌지 않고, 토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아 좀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친구의 사진은 그것과는 판이하다. 

제주도 남부의 산방산을 주제로 봄날의 노란 유채와 바람에 일렁이는 녹색 보리, 새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길게 떠있는 저 멀리 한라산 산정이 보이는 광경이다. 

그 사진은 단지 1년에 한 번 오는 봄날에만 촬영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채가 피었을 때만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유채 색깔이 딱 하루 이틀 나타나는 ‘연둣빛이 좀 많이 감도는 황색’일 때라야지, 조금만 시기를 못 맞추면 연두색보다는 황색이 더 많아져서 안 된다. 당연하게도 황사가 낀 날 못 찍고 가스가 뿌우연 날도 못 찍는다. 한라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이 안 보이는 사진이라면 의미가 줄어든다. 그리고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찌 될까? 망망대해에 솟아난 제주도,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과 그보다는 훨씬 낮지마는 일출봉과 산방산들은 모두 마른 하늘에 구름을 만드는 곳이다. 이렇게 신비한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산에서 구름이 없다면 제주도 산은 신비를 잃는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위해 그는 20년 넘게 제주도에 살며 언제나 불완전한 만족 속에서 해마다 때마다 보아둔 피사체를 찾아 찍고 또 찍는다. 그것도 셔터를 한 번 눌러서 얻는 작품이 아니라 그날도 필름 40통을 써서 겨우 한 컷 건진 거란다. 

“사진 기술이 얼마나 없으면 그렇게 많이 찍어야 하냐?”고 내가 놀려대지만, 그는 촬영한 필름을 3천만원짜리 고급 스캐너로 디지털 변환작업을 해서 그것을 확대할 수 있는 만큼 확대한 상태에서 약간이라도 초점이 안 맞으면 도공이 도자기를 깨부수듯 여지없이 필름을 폐기시킨다. 

오차를 용납하지 않는 정교함, 만족할 때까지 반복 촬영하는 미련스러운 정성 덩어리다. 

20킬로그램이 넘는 카메라 배낭을 메고 반드시 ‘한라산의 날씨가 사진을 만들 수 있는 날’만 골라, 벌써 313회나 등정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전에 찍은 것보다 더 좋은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한다. 그 말은 “오늘의 사진에 만족하지만, 내일은 더 좋은 것을 찍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어떤 죽을 고비를 넘기는지, 단 한 번도 백록담에 오르지 못한 내가 설명을 하는 것 자체가 분수에 맞지 않으나, 안 가봐도 실상은 훤히 안다. 그의 산행일기가 조선왕조실록처럼 다 적어놓기 때문이다. 


 “한라산 산신령님께서 보살펴주지 않으셨다면 난 여태 살아있지 못했을 거야”


그는 가끔 그렇게 말한다. 그는 사진이 삶이다. 가치요 보람이다. 목숨을 걸고 사진을 한다. 그의 사진이 세계 최고 회사의 상징 사진으로 뽑힌 것은 천우신조와 집념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그가 목숨을 건 사진작업을 하는데, 난 무엇에 목을 걸고 있는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자부러운(졸린) 나를 정신차리게 만든다.


*2022년 

그는 530회 등정을 했다. 그가 산행할 때마다 쓴 산행일기는 이미 1,000쪽을 넘었다.

11월 8일. 월식 날 그는 지난 30여년 간 쌓은 사진 기술을 다 모아 달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 어느 매스컴에서 발표한 것보다 멋지고 선명한 월식 사진을.

작가의 이전글 [영화감상문] 황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