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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릉도원 김수형 Dec 25. 2022

미국 라스베이거스 출장기

라스베이거스 출장기

 2005

 

서비스의 본질

   내가 두산중공업 기술고문으로 근무하던 2005년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미국에서 개최된 PGI(Power Gen International)에 다녀오기 위해 생전 처음 미국 땅을 다녀왔다. 김동길 박사와 정원희 주임이 처음부터 동행하였고, 둘은 언제나 내가 불편함이 없도록 마음을 많이 써 주어 깊이 고마워하고 있다.

항공기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바닷가의 광경과는 사뭇 달리, 하늘은 붉지만 구름은 그리 쉽게 붉어지지 않았다. 바다에서 볼 때, 구름이 하늘에 끼었다면 천지는 온통 붉게 물드는데 말이다. 그렇다. 여명이건 황혼이건 역시 구름이 없으면 태양 혼자서는 못 만든다. 

12시간 정도의 비행 중에 계속 먹을거리를 갖다 주는 스튜어디스의 ‘서비스’에 대해 생각이 많이 갔다. 서비스하는 모습, 얼굴 표정, 왔다 갔다 하는 태도에서부터 손끝 하나 움직이는 것까지 그야말로 마음에서 우러나는지 아닌지, 그런 방면에 매우 민감한 나로서는 참 관심거리였다. 

나로서는 그들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가식이 있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이 항공사의 경쟁력이라는 것, 그것이 항공기 안전과 합쳐서 기업을 살리는 주 무기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어여쁜 아가씨가 하릴없이 얼굴과 몸매만 예쁘다고 그것 만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스튜어디스가 무슨 선망의 대상이 될까? 성의를 다하는 서비스라는 것이 기업을 움직일 수 있다니 참 세상엔 별 무기도 다 있다 싶었다.


비행기에서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를 틈틈이 읽었는데, 첫 부분에서 맞이한 글이 매우 인상 깊고 출장을 다녀온 후에도 내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운 것에 집착해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어려운 것을 극복해야 자신의 고유함을 지닐 수 있습니다. 고독한 것은 어렵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인용했다는 이 구절. 평소에 뭔가 새로운 것을 맞이하기 앞서서 막연한 두려움을 잘 타는 내가 새겨들을 말이었다.


미국.

내가 태어나고 2년 반 만에 6.25를 겪고 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미국이 보내준 우유가루를 배급으로 타다가 알루미늄 도시락에 담아 밥솥에 넣어 쪄 먹었던 나로서는 미국이 고맙다.

큰 아들이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제 누나가 사는 파리를 근거지로 유럽여행까지도 한 후에 이 아빠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아빠, 은퇴 후에 무슨 사업이라도 하시려거든 미국하고 유럽을 꼭 다녀오신 후에 결정하세요”.

오늘날 전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무기와 식량과 오일을 주무르는 큰 손 미국, 도무지 그런 나라에 한 번도 못 가봤으니 원.


 ‘빗물이 대륙을 빚었다’


미국 대륙 위를 처음 날아가면서 아래에 펼쳐지는 육지의 모습을 보고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비가 저 산골짝들을 만들고 거대한 물 흐른 자리를 만들었을까? 그려. 만물은 다 지 잘나서 잘난 게 아니지. 


“멋진 산아 너는 비에 대해 얼마나 고마워하니?”


빗물이 저 산을 만든 것인데, 산은 늘 빗물에 고마워하는 것을 잊고 살지. 거기에 인간의 힘으로 거대한 농토를 일군 것도 내려다보이네, 인간의 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LA상공을 날 때 본 시가지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내가 이세상에서 본 제일 큰 바둑판이었

다. 고대 북경과 신라의 수도 경주가 바둑판같이 잘 정돈된 도시였다는, 그런 자랑스러운 도시들도 순간 머리에 떠 올랐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야경에 이끌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전 세계에서 제일 큰, 무려 5천 개의 객실을 가진 MGM GRAND 호텔에 들었다. 영화가 시작될 때 사자가 포효하는 장면이 나오는 그 유명한 영화제작사 MGM.

내 방에는 마릴린 먼로와 또 다른 세 사람의 영화배우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고, 호텔이 운영하는 1층 카지노에도 곳곳에 배우들의 사진이 많이 붙어 있었다.  

미국인들은 라스베이거스에 뉴욕과 파리 그리고 이태리를 옮겨 놓았다. 어마어마한 자금력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기술이 놀랍다. 야경이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아서 우리는 모노레일도 타기도 하고, 주로 걸어 다니면서 밤거리를 즐겼다. 베네치아에서는 한 밤중에 대낮 같은 ‘인공 하늘’이 사람을 깜빡 속게 만들었고, 이태리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 모양을 본뜬 아름다운 시가지가 2층에 길게 만들어져 배를 띄우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 사공들이 손님을 받고 있었다. 인공호수에서는 분수 쇼도 벌어지는데 우와 참 멋있었다.


카지노 그 참 기이한 마력

카지노가 라스베이거스의 최고 명물이라, 호텔마다 거리마다 굉장한 규모에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좀 따면 더 따려고 계속 하고, 좀 잃으면 만회하려고 계속 하고, 밤을 새거나, 새벽이거나 카지노는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좀 따서 일어서는 것은 강심장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나…..

빠찡코 종류도 엄청 다양해서 수 없이 많다. 마치 일본처럼 대중화되어 있어, 할머니도 시장 바구니 옆에 끼고 나가시다가 한 번 하고 가시듯, 누구나 쉽게 대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돈을 잃는 것 같다.

여기서는 돈을 잃어도 별로 배가 아프지 않을 것 같다. 하도 여러가지 시설을 잘 해 놔서 눈으로 보는 것 만도 좋으니 본전생각도 안 나겠다. 일년 내 번 돈을 어쩌다 여기 한 번 왔으니 카지노에서 좀 잃는 것도 미국인들은 문제가 아니고 즐거움인 것 같다. 카지노 때문에 전자산업도 엄청 발전했을 것이다. 이들 모니터의 1,2위 납품자가 한국제품이라는 것도 후에 알게 되었지만, 카지노 규모는 정말 무척-매우-굉장히 컸다.

나는 게임에서 몇 번은 잃었지만 한 번은 150달러를 따서 일행들과 나누어 썼다. 총정리 하면 좀 땄다고 말할 만하다.   105달러, 우리 돈 약 11만원이다.


사막지대를 옥토로 만들기 위한 작업으로 정부에서는 후버댐을 만들었는데, 공사인부들이 묵던 자리가 오늘의 라스베이거스가 되었단다. 귀국할 때 공중에서 본 이 도시도 끝없이 이어지고 황홀한 조명 행렬이 또한 엄청난 규모였다. 여하튼 대낮에 보니 공항 하늘에는 평균 3대 정도의 여객기가 떠있을 정도이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가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가 거리 구경을 나섰을 때 육교에서 사복을 한 두 사람이 민간인 두명에게 수갑을 채우는 장면을 보았다. 그게 바로 말로만 듣던 “라스베가스의 치안은 경찰보다 마피아가 먼저 담당한다.”인가 보다. 웃기는 일이다. 마피아가 관광객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다니, 이런 것도 질서요 민주인가?


발이 아프도록 수집한 자료

PGI에서 우리 두산중공업직원들은 발이 뜨거웠다. 두산중공업 연구원에서만 22명이라는 대규모 참관단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우면서 R&R 즉 역할과 책임 분담을 했다. 누가 어느 구역의 Brochure를 수집할 건지, 보고서는 네 종류를 쓰는데 어느 시점에 제출할 건지를 일사불란하게 정했다.

인도,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을 보기 드물었는데, 우리는 한 연구소에서만 22명이 다녀온 것. 그만큼 우리는 세계를 향한 날갯짓을 힘차게 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회사 사람들은 총 50명이 넘게 이 행사에 참가했고, 두산 부스도 만들어 전 세계에 홍보했

다. 개막식에는 한국 발전회사 후배들도 와서 축하를 같이 해 주었다. 미국 상무성의 초청으로 십여 명의 직원들이 PGI에 참석해 미국땅에서 나는 그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김양수, 정훈, 윤상철, 윤종락, 박장환 등 내가 잘 아는 후배들이어서 더욱 좋았다. 


돌아다닌 만큼 얻는다

PGI는 전 세계에 발전 기술을 알리는 기회다. 두산에서도 논문발표를 했는데 마침 내가 같이 근무하는 팀의 김동길 박사가 영어로 발표를 아주 잘 하여 호평을 받았다. 

전시장에는 무려 1,008개 업체들이 참여하여 한 번 찾아갔던 코너를 이튿날에는 찾아가지 못할 정로 규모가 컸다. Dry Type Bottom Ash Hopper를 전시한 코너에서는 최근 당진화력에서 잇었던 두 차례의 Bottom Ash Hopper 폭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풀 수 있었으니, 바로 ‘건식 회처리 장치’였고, 이 한 건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정보요 지식이 되었다.

우리가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정보 하나를 줍기 위한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먼저 보고 그 정보를 전달교육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많은 신기술을 눈으로 확인했는데 우리야 편안히 쉽게 남의 기술을 볼 수 있었지만, 그 기술을 만든 회사들은 얼마나 노력해서 만든 것일까? 사운을 걸고 연구하고 개발해서 만들었을 터. 그래서 세계 시장에 내놓았을 터. 그래서 기업이 생존을 걸었을 터……


미국에서 눈물을 찔끔거리다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에 가서 우리나라 LG가 설치한 영상과 소리의 어울림을 보고 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셋이서 물어 물어 찾아갔다.

택시기사에게 “LG 어쩌구…” 하면서 거기 데려다 달라고 하니 알아듣지 못하여, “코리아 엘지 디지털 쑈 어쩌구” 하면서 더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그 거리 이름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니 기사가 알아먹지 못했다. 

이 때였다. 용감하게도 “다운타운 이름이 뭐냐?”고 내가 물었더니, 뭐라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거기로 가자”고 했더니 탁 해결되었다. 동행한 김박사가 “역시 고문님은 핵심을 딱딱 짚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매우 영어를 잘 하십니다”라고 추켜주었다. 그렇지만 사실을 실토하자면 미국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강의 때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영어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영어는 제법 잘 했는데, 순 문법 위주였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눔의 영어!

 그 다운타운에서 나는 감동 먹었다. 약 400미터 길이의 카지노 상가 건물 사이의 도로 위 공중에 만든 돔에서 우렁차게 뿜어져 나오는 소리와 돔 천정의 LED 사이니지(Digital Signage)가 펼쳐질 때 많은 관광객들이 다 천정을 쳐다보며 환호하던 광경!

“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전자제품을 선전하기 위해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며 몸부림을 치는데, 어떤 놈들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 하는 판국이니, 이게 도무지 무슨 짓인지….!


펼쳐지는 영상을 유심히 살폈지만 태극기나 코리아 같은 것은 안 보였지만, LG 마크는 자그마하게 보였다. 이 시간에는 가로등도 다 꺼버리고 하는 영상 쇼인지라 음악과 영상의 변화에 따라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가운데 고개를 젖히고 천정을 쳐다보는 수많은 관광객 중의 한 나그네, 순간 나는 모래사막에 세운 그야말로 ‘황야의 아방궁’에서 왈칵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대회를 마치고, 아스라히 라스베이거스 그 질서 있는 환락같은 도시를 꿈결인 양 빠이빠이 하고 귀국했다.


  회장님의 지시

 한국의 어떤 회사 참가자들은 다다음날 금세  관광을 가버리던데, 우리는 발이 아프도록 자료를 수집했고, 그 양이 어마어마하여 다 모아서 별도로 국내에 운반했다. 며칠 후 박용성 회장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자료를 모두 스캔해서 인트라넷에 올려 활용을 많이 하게 하라”.

 그렇게 우리는 거기까지 가서, 그랜드 캐년 구경도 못하고, 기술정보획득에 땀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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