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타이밍과 마음이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다. 현대에 와서는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는 뜻으로 통한다.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과의 관계라 하지 않는가.
지금은 내 옆에 있고 익숙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구더라도 미래엔, 몇 년 뒤엔, 당장 내일이라도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중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중학교 때 같은 반에 배정되어 1년 내내 붙어 다녔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중학교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종종 만나고 연락도 꾸준히 했던 친구였다. 참 많이 좋아했고 잘 맞았고, 즐거웠었다. 그 친구 덕분에 좋은 쪽으로 변화한 것도 많았고 우리끼리 만든 우리만의 놀이는 특별하고도 소중했었다. 그때는 성인이 되어서도 붙어 다닐 것이라 생각했고 수능만 끝나면, 성인이 되면 더욱더 즐겁고 다채롭게 추억의 색깔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모든 일들이 그러하듯 내 생각과는 달리 성인 이후 우리의 끈은 뚝 끊겼다. 처음 몇 년간은 그 끈을 혼자서 양손으로 붙잡으며 억지로 다시 붙여보려 했다. 친구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나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다른 친구들까지 모두 피하는 듯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사정이 있겠지, 나중에 때가 된다면 말해주겠지, 해결된다면 다시 전처럼 지낼 수 있겠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꽤나 친밀했던 친구가 점점 멀어져 가는데 그냥 납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지만 먼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이유가 있을 테니 참고 기다리기로 결정했었다.
나는 매년 생일 때마다 내 생일 때에도 먼저 연락이 없었던 그 친구에게 장문의 문자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중학교 시절 친했을 때부터 꾸준히 서로에게 보냈었던 장문의 생일 축하 문자는 단방향이 됐고, 해가 갈수록 결국 내용도 빈약해져 갔다.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친했었는지, 내가 요새 무얼 하고 사는지, 너를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등 새로운 업데이트가 없는 우리 사이에 담아줄 수 있는 말들은 점점 반복되고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생일 축하 연락 외에 새해 안부, 추석인사, 크리스마스 인사 등 더 이상 공통되거나 이어진 것이 없었던 우리 사이에는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 없었기에 특별한 날을 핑계 삼아 인연의 끈을 이어 붙였다.
친구는 내 연락을 받을 때마다 고맙다며 축하에 기뻐하는 듯 보였으나, 어딘가 불편한 듯 얼마 안 가 연락을 마무리 지었다. 옛 친구들의 근황과 공통점이 없는 서로의 일상은 오래갈 대화거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시간 되면 보자는 말을 항상 해왔다. 설마 부담이 될까 하여 날짜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친구는 그러자며 연락하겠다고 했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란 걸.
그래도 약간의 희망은 품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내 마음속에서 그녀의 존재가 사라져 갔다. 처음으로 생일을 놓쳤고, 더 이상 안부연락도 하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서일까, 그저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진 탓일까, 아니면 이미 내 일상에 다른 것들로 가득 차서일까, 이유는 한 가지로 단언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혼자 애써 붙잡고 있던 인연의 끈을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놓아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의 연락을 받았을 때, 반가움도 있었지만 '왜?' 라는 의문이 더 큰 목소리로 들렸다. 그렇지만 티는 내지 않고 몹시 반가워하며 간단한 안부인사를 주고받았다. 여전히 친구는 연락이 끊겼던 이유와 현재 자신의 근황에 대해 설명이 없었고, 나 역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번엔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우리 사이에는 따라잡기에 너무 긴 시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난 그걸 채울 자신이 없었다. 아니, 의지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내가 기억하는 친구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친구뿐이고 현재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그걸 마주하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다.
처음으로 그녀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바쁜 것이 끝나고 꼭 만나자며 만나고픈 의지가 잔뜩 묻어 나오는 기약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바로 시절인연이었다. 분명 난 그녀를 계속 만나고 싶어 해 왔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다시 추억을 쌓아나간다면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넘어 두터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서운함이 커져서일 수도 있겠고, 아무런 의문 없이 오랜 시간 혼자 기다리며 붙잡고 있기엔 우리 추억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거절할 순 없었기에 좋다며, 이번엔 내가 공수표를 들이밀었다. 과거에 내가 그랬듯 그녀는 대화를 이어나가려 새 대화 주제들을 꺼냈는데, 그 마저도 얼마 안 가 동나버렸고 나 역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몇 가지 대답과 질문을 한 뒤 침묵을 지켰다. 친구는 아쉬운 듯 대화를 더 이어 나가보려 했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정말 더 붙일 풀이 없었고 이미 그것을 알고 받아들인 나를 느낀 듯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며 마무리지었다.
오히려 홀로 붙잡고 있을 때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미 내 쪽에서 놓치고 나니, 상대방이 다시 잡고 나에게 건네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받아들였다, 우리의 인연은 끝났다는 사실을. 아쉬운 일이지만 그것이 마지막 페이지다. 이미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며 서로가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빼곡히 써 내려갔고,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가 몇 페이지였는지 찾기엔 기억도 흐릿하고 꽂아둔 책갈피도 사라져서 찾을 수 없으며, 함께 공통된 이야기를 쓰기엔 각자 쓸 내용들이 더 먼저이다.
조금 더 빨리 연락했더라면, 이유라도 말해주었더라면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원망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 또한 내가 느낀 바가 맞음이 선고 내려지는 것 같았다.
인간관계는 버스와도 같다 한다. 그러니 난 현재 함께 타 있는 사람들과 추억을 쌓고 새롭게 탈 사람을 기다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