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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디자이너 May 23. 2021

냉이 캐는 엄마

치유 다섯.

엄마 생신상을 우리 집에서 차려드리기로 했다. 큰언니와 둘째 언니는 일 때문에 바쁘다고 했고 남동생은 감기가 심하게 걸려 못 온다고 했다. 엄마 생일은 음력으로 2월 3일, 구정 설이 지난 후라 언제부턴가 전화만 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했었다. 엄마는 다들 모이지 못한다는 말에 다음에 만나자고 했지만, 나는 장을 다 봐놔서 꼭 와야 한다고 했다. 이번 엄마 생일을 내 손으로 챙겨드리고 싶었다.


변산에서 3시간쯤 걸려 도착한 엄마는 가져온 박스에서 주섬주섬 검정 비닐봉지들을 꺼냈다. 말린 조개 4 봉지와 갓김치 4 봉지를 식탁 위에 올렸다. 엄마는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언니들과 동생에게 꼭 전해주라고 신신당부했다. 나는 봉지 하나를 열어 숨도 죽지 않은 갓김치를 손으로 집어먹었다.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도 먹네. 아주 연해서 더 맛있을 거야."

"울 엄마 김치는 여전히 맛있네. 다들 좋아할 거야."

엄마의 웃는 모습이 좋아 김치를 몇 번 더 집어먹으니 속이 아렸다.


우리는 미역국과 남편이 구운 소고기와 엄마의 갓김치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설거지하고 보니, 엄마는 베란다 창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밖을 둘러보던 엄마가 3월 중순이라 곧 있으면 냉이꽃이 펴서 못 먹겠네, 라며 혼잣말을 했다. 어릴 적 엄마와 냉이 캐던 생각이 나서 나가자고 했다. 나는 칼 두 자루와 아이들도 같이 캘 수 있게 모종삽 두 개를 챙겼다.



  


우리는 밖으로 나와 들판을 걸었다. 엄마는 겨울이라 비어있는 밭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나는 남에 밭에 들어가는 엄마를 말렸고, 농사 전이라 괜찮다고 엄마가 대답했다. 엄마는 칼을 한 손에 쥐고, 빨간색 비닐봉지를 들고, 뒷짐을 지고 걸었다. 아이들과 나도 엄마를 뒤따랐다. 아이들은 흙이 고르지 않은 밭둑을 걷다가 발이 미끄러지자 양손을 쭉 펴고 수평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저 멀리서 엄마가 소리쳤다.


"여기 냉이 있네. 이리 와봐!"

아이들은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여기 봐봐, 냉이는 모여서 나거든. 여기 냉이 천지야!"

냉이를 발견한 엄마의 눈빛이 반짝였다. 초등학교 1학년 딸과 5학년인 아들이 냉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다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머리를 숙여 냉이를 살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봄이 되면 냉이를 캤는데 소풍 가는 것만큼 즐겁고 설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냉이를 캘 때면 나를 데려가기도 하고 때론 언니들과 동생도 함께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손을 다칠까 싶어 칼 대신 쇠숟가락을 쥐여 줬었다. 나는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숟가락으로 냉이를 퍼서 뿌리에 흙을 털었다. 엄마와 언니들은 이가 나간 칼로 냉이를 캤었다. 그때는 냉이를 캐는 일이 매끼 먹는 밥처럼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명절과 엄마 생일에도 모이는 일도 쉽지 않게 되었다.



냉이 캐기에 신이 난 아이들이 할머니 곁에서 쫑알거렸다.

"할머니, 이거 냉이 맞아요?"

"어, 맞아. 잘도 찾네."

"할머니, 이거 보세요. 저도 엄청 많이 캤어요."

"아이고, 어릴 적 니 엄마랑 어찌 그리 똑 닮았니. 엄마도 냉이를 아주 잘 캤어."


엄마는 아주 밝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기분이 좋을 때면 나오는 말투였다. 어릴 적 엄마는 냉이를 캘 때면 저런 목소리 톤으로 칭찬을 많이 했었다. 그때도 내가 냉이를 캐 놓은 바구니를 들여다보며 서 엄마는 말했다.

"어린 게 어쩜 손이 그렇게 야무지니, 우리 셋째 공주님이 냉이도 참 잘 캐내."

나는 누구보다 냉이를 많이 캐려고 애썼다. 커서도 냉이를 볼 때마다 그날을 그리곤 했었다. 희미하지만 기억에 남는 낡은 빨간 바구니와 찌그러진 숟가락, 은은한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 엄마 곁에 언니들과 동생과 모여 앉아 종알거리며 냉이를 캐던 모습이 어렴풋이 아른거렸었다.



엄마는 그때처럼 한자리에서 냉이를 다 캐고 나면 다시 냉이를 찾으러 다녔다. 아이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를 쫓아다녔다. 나는 냉이 캐기는 뒷전으로 하고 그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지며 하늘이 발그스레해졌다.




집으로 돌아가 어릴 적에 엄마가 했던 대로 냉잇국과 냉이 부침개, 냉이에 두부를 으깨어 넣고 무쳤다. 그러고는 간이 맞는지 보라며 엄마 입에다 넣어줬다.

"간이 딱 맞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무쳤어."

"엄마 닮아서 그러지."

엄마의 칭찬에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릴 때 고기를 잘 안 먹어서, 이렇게 두부를 으깨서 나물에 넣어서 해줬어. 그럼 다들 얼마나 잘 먹었다고."

나는 그날을 생각하며 나물을 한 움큼 입안에 넣고는 오물거리는데 목이 메어왔다.



어릴 적 엄마와 냉이를 캤던 추억은 유년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겪은 아픔을 덮을 만큼 가슴을 따뜻하고 편안하게 했었다. 냉이를 캐던 그날만 생각해도 좋았던 느낌이 온몸 가득 채웠다. 무엇이 그리도 좋았을까? 냉이의 꽃말처럼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라는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 덕분이었을까. 나는 또 그날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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