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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27. 2021

나에게 떨림은 수치심이었다


적막감이 흐르는 조용한 책방에서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내가 써간 글에 눈을 맞추고, 귀를 모은다. 나는 책방에서 하는 에세이 글쓰기 수업 중이다. 부족한 글을 공개하기도 두려운데,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글을 읽으려니 더 떨린다. 제목을 읽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며  벌써부터 숨이 차오른다. 첫 줄을 읽어 내려가는데 긴장감에 종이 위에 글자들이 날뛰는 것 같다.

심장이 심하게 뛰니 글 읽는 내 목소리가 울렁울렁 리듬을 타며 목구멍을 넘어와 입안에 가득 찬다. 입술을 비집고 나오며 내뱉어진 목소리도 떨린다. 창피함에 소리를 재빨리 주워 담아 귀속으로 밀어 넣지만, 심장은 더 빨리 뛰고, 숨은 더 차오르고, 목소리는 더 떨려오고, 말은 더 더듬고.....

책방에는 작게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소리로 고요하고 내 안은 미친 듯이 요란하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마지막 글자까지 읽는다. 드디어 낭독이 끝나고, 나는 곁눈질로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이렇게 떨고 있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젠 불안감이 온몸을 덮쳐온다. 창피함에 수치심이 눈을 뜨고, 머릿속은 하얗다. 

그때 정적을 깨며 선생님이 말한다.
“강의하는 사람인데도 떨리네요. 자기 글을 낭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거야.”
선생님의 말에 평정심을 찾는다. 그제야 울렁거림이 잦아든다. 빨리 뛰던 심장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저래서 강의를 어떻게 하지?’ 평가의 말이 아니었다. ‘노력하면 나아질 거야!’ 하는 위안의 말도 아니다. ‘읽느라고 애썼어요.’라는 안쓰러움의 말도 아니었다.

나에게 뭔가 신비스러운 것을 발견한 듯한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어간다.


“떨림은 아름다운 것이에요. 나도 떨렸으면 좋겠어요.”


순간 머릿속이 쿵! 하며 거대한 뭔가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내게도 환대받지 못했던 '떨림'을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떨림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귀한 '보석'처럼, 음악을 듣다가 아름다운 선율을 발견한 듯한 '탄성'으로, 순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함'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떨림은 타인 앞에서 맨몸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움'이었다. 잘못이 탄로 나서 놀림을 당하는 '모멸감'이었다. 수도 없이 노력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좌절감'이었다.



순간 떨림이 내 온몸을 다시 휘감았다. 내 몸을 감싸 안으며 머리에서 발끝으로 사르르 녹아내렸다. 몸으로 떨림을 재해석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내 안에 떨림이, 아름다운 파동을 낳게 되었구나.’




나는 용인에 있는 시골 책방에서 에세이 수업을 받고 있다. 책방 주인은 오랜 시간 편집장 일을 하고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고, 시인이기도 하다.

주 1회 수업에 A4 두 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가고. 각자 자신의 써온 글을 읽고 합평한다. 글쓴이가 글은 읽고 나면 선생님은 눈물로 그의 삶을 공감하고, 정성스레 품어 준다. 그리고 고쳐야 하는 부분에 대해 날카롭고, 정확한 피드백을 준다.

에세이 글쓰기 수업을 한 지 벌써 8개월째. 선생님 덕분에 깨달은 떨림에 대한 재해석으로 나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했던 내가, 타인 앞에서 완전히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유년기에 느꼈던 수치심, 모멸감, 좌절감 같은 나의 약점들을 드러내는 글을 썼다. 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어떨 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를 쏟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아프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몸부림치고, 분노하며 맘을 할퀴던 유년기 상처 앞에 담담해졌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글로써 치유를 받은 것 같았다.

말의 중요성을 선생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툭 내민 선생님의 말로, 나는 인생에서 풀리지 않았던 해답을 찾게 되었다. 선생님처럼 대화 속에서 내민 말이, 타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어 다양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익고 또 무르익어 어쭙잖은 조언보다 선생님처럼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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