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이 지난 간 곳에는 광이 난다. 그녀는 어떠한 잔소리 한번 없이 13년 동안, 나의 그늘진 곳을 구석구석을 닦아 주었다.
첫째 아이를 낳고는 어머님이 산후조리를 직접 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 달 정도 우리 집에 함께 지내며세끼 밥에 간식, 청소, 빨래, 아이 목욕, 재우기, 기저귀 갈기까지 모조리 도맡아 했다. 누워있기 죄송해 뭐라도 거들라 하면 찬바람을 쐐거나 손에 물을 묻히면 산후풍이 온다며 한사코 말렸다.그때 어머님이 집 안 일하는 걸 보며, 살림을 배웠다.
아이 돌 때쯤 되어 복직한다고 하니, 여자도 일해야 큰소리친다며아이를 2년간 키워주었다. 시어머님은 아이들 눈높이에서 잘 놀아준다. 그래서 시댁에 가면 아이들은 어머님과 노느라 나는 찾지도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놀이할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아이들은 어머님만 쫓아다닌다.
가끔 부부 싸움하고 어머님께 전화해 하소연을 하면 '어쩜 하는 짓이 지 아버지와 똑같니'하며 내 편을 들어준다. 그러면서 내 말에맞장구를 쳐준다. '아이고 그렇지.', '그랬구나', '그럼, 그럼' 그렇게수다를 떨면 남편에게 서운함이 사라진다. 어쩔 땐 싸움에서 자꾸 지는 내가 안타까운지 싸우는 법도 알려준다. 자꾸 그러면 ‘여태 살고도 나를 몰라?' 이 말 한마디만 하라며 코치한다.
결혼 10년 차 때는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남편과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며 내손에 용돈을 쥐어줬다.
“결혼 후 단 둘이 여행 가는 거 처음이잖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이걸로 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구경도 잘하고 와. 애들 걱정하지 말고.”
친구들이 모여 시댁 흉을 볼 때면 나는 말없이 앉아 있다. 칭찬 거리가 더 많아서다. 그래서남편은 어머님이 해주는 것에 비해, 마음뿐인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님을 대신해서 생색내는 남편이 미울 때도 있지만 어머님이 만져주는 사랑의 힘으로 남편을 다시 보듬게 된다. 남편에게 아직 콩깍지가 벗어지지 않는 건 순전히 어머님 덕분이기도 하다.
시어머님은 99세가 되신 시 할머님을 모시고 사는데 가끔씩 젊을 때 호된 시집살이에 대해 말한다.
“살던 집이 산골이라 수도가 없었어. 아랫동내 가서 물을 길어다 밥을 지었어. 만삭이라 배가 남산만큼 나와서 물지게를 양쪽에 매고 언덕을 오르는데, 배에 무릎이 닿는 거야. 그때 참 힘들었어.”
그래서 절대로 며느리에게 시집살이시키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어머님은 때마다 밑반찬과 각종 김치를 해서 나눠주기 바쁘다. 나는 늘 시댁에서 두 손, 마음 가득 받아오고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고민이다. 어머님은 잘 사는 것만으로 효도하는 거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건가싶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어린 소녀는 생각했었지>란 시를 읽고 시 안에서 어머님이 느껴졌다.
출처: Pinterest
어린 소녀는 생각했었지 아줌마들의 어깨는 왜 저렇게 은은히 풍겨 올까 하고 물푸레나무처럼 치자나무처럼 아줌마들의 어깨를 감싸는 저 아늑한 아지랑이 같은 것은 무엇인가를
시댁에 처음 인사하러 간 날, 아파트 입구부터 온기가 달랐다. 거실에 거하게 차려진 상에는 손수 만든 음식들로 가득했다. 잡채, LA갈비, 육개장, 각종 전 들, 계절 나물, 막 지은 윤기 흐르는 쌀밥까지. 아버님은 후식으로 사과와 배를 직접 깎아 주었다. 집안 가득편안한 웃음소리와 따뜻함에 묻혀 가족 모두가 평온해 보였다. 아늑함이 느껴졌다.
그날 주방에 서 있는 어머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어머니 등에서 아지랑이 피어나고있었다. 아버님과 자식들이 어머님 양쪽 어깨를 기대어 편히 쉬고 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친정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이혼 후, 홀로 4남매를 키우느라 장사를 했다. 늘 바쁜 엄마와 집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먹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 같다. 이후 어머님 같은 따뜻한 아내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줌마들의 어깨에 내려 쌓이는 저 마음결 고운 것은 하루 또 하루 남을 사랑하며 살기 위한 그저 그러한 피로였다고
나를 위해서까지 기도해 주는 어머님의 따스함이 내 몸을 감싸 안는다.
“새벽에너를 놓고 기도 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몰라. 아들과 잘 살아줘서 고맙다."
고단함에도 며느리인 나까지 기꺼이 안고 가며기댈 수 있는 어깨를 아무런 계산 없이 내어 준다. 어머니는 많이 배우지 못해 한글도 못 쓴다며 부끄러워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흉이 되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어머님을 존경한다. 성품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배운다는 걸 어머님과 어머님이 키운, 남편을 보면서 깨닫는다. 나도 마음결을 갈고닦아, 언제든 아이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편안한 어깨를 내어주고 싶다.
간절히 바라는 것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기도로 대신하는 시어머님의 삶 속에서 엄마 되는 법을 배운다.시어머니의 아늑한 아지랑이를 느끼며 나는 한 뼘씩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