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이란 선물과 책임 사이에서
손원평 저 <아몬드>라는 소설에는 괴물이 둘 등장한다.
한 녀석은 생긴 게 꼭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에 이상이 있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증상을 앓고 있고, 다른 한 녀석은 어린 시절 기댈 곳 없이 자란 탓에 본인의 여린 감정을 애써 숨기며 강한 척, 센척하기 바쁘다. 한 녀석은 감정을 못 느껴서, 다른 한 녀석은 너무 감정적이어서 주변인들로부터 '괴물'소리를 듣는다.
할멈, 왜 사람들이 나보고 이상 하대?
네가 특별해서 그러나 보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질 못하거든.
에이그, 우리 예쁜 괴물.
어떤 일이 생겨도 무덤덤한 아이, 윤재.
눈앞에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혼수상태가 돼버린 범죄의 현장에 놓여있었음에도 무덤덤한 아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소름 끼쳐한다. 하지만 글을 읽을수록 감정을 제대로 느낄 줄 아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소름 끼치고 무서워졌다.
윤재는 복도를 지나다 '창밖의 꽃이 햇볕을 받아야 좋겠다.'라고 생각하여 나뭇가지를 반대방향으로 틀어주는 아이이다. 그런 윤재에게 한 아이는 묻는다. "할머니가 눈앞에서 죽는 걸 본 기분은?"
이 질문에도 역시 덤덤하게 답하는 윤재지만, 공감능력의 고장으로 덤덤할 수 밖에 없는 윤재보다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 감정을 제대로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끔찍한 괴물 같았다.
폭력적이고 사고를 일삼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곤이는 잔인한 세상 속 본인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윤재에게 감정을 일깨워주기 위해 본인이 죽인 나비의 잔해를 닦아내며 '아무런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다 못 느꼈으면 좋겠다'며 몹시 우는 여리디 여린 아이이다.
'쟤는 문제아니까', '쟤는 뇌에 문제가 있으니까' 하고 이들을 괴물로 치부해버리는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타고난 평범한 조건에 취해 스스로에게 매번 면죄부를 주는 쪽이 오히려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건 아닐까.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처럼 같은 세상에 나고 자라도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람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함에도 사람들이 말하는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인들의 믿음과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할머니와 내가 남들과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며 감정을 교육한 엄마, 나의 다름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감싸주고 존중해준 심 박사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러고보면 타고남은 존재해도, 그게 영원할거란 보장 역시 없는 것 같다.
뉴스만 틀면 각종 흉악한 소식들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온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우리의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간다면 또 다른 괴물을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