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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듀 Dec 10. 2021

행복 프레임

희극과 비극

찰리 채플린의 너무나도 유명한 명언이 있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완벽하게 행복하거나 불행한 삶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너무 쉽게 타인의 삶을 판단하곤 한다.



얼마 전 대학생 때 대외활동 모임으로 만났던 언니, 오빠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늘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했던 오빠가 결혼을 하게 되어 청첩장을 받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스물셋의 팀의 막내였던 나도 어느새 스물아홉이 되었고 하나 둘 결혼 소식을 전해오는 오빠들을 보면서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우리 모임엔 이름도 얼굴도 참 예쁜 언니가 있는데 내가 스물세 살 나이에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참 멋진 언니다. 첫 만남에서 언니의 자기소개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언니는 책을 가까이하는 부모님 덕분에 아주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그러한 언니 아버지의 직업은 교수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흔히들 말하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언니는 여전히 언니의 전공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에 속해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일 욕심, 성공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내가 예전부터 그려 온 이상적인 30대 여성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언니를 볼 때마다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자주는 아니었지만 약 7년여간 꾸준히 만남을 가져왔음에도 언니는 내게 동경하는 대상인 동시에 다가서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데 이번 만남에서 내가 그동안 언니에 대해 알게 모르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각자 근황 토크를 하던 중 나의 퇴사와 이직 근황에 이어 올해 엄마의 패혈증으로 엄마를 잃을 뻔했던 고비가 있었고, 그로 인해 번아웃이 왔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젠 무사히 지나간 일이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어쩐지 맞은편에서 내 이야기를 듣는 언니의 모습이 유독 진지해 보였다. 

각자 헤어지면서 언니와 같은 방향으로 걷게 되었는데, 언니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도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올해 어머니가 굉장히 많이 아프셨다고 했다. 그때 언니도 혼자 병실 문 앞에서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언니도 나도 이젠 잘 넘어간 고비지만, 언니가 느꼈던 그 공포를 누구보다 나는 잘 안다. 나 역시 3년 전쯤 아빠가 돌아가셨고, 올해 엄마의 갑작스러운 패혈증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 문 앞에 혼자 남겨졌을 때 외동인 나는 '이제 정말 나 혼자'라는 공포에 사로잡혔었다.

언니의 힘들었던 시간들에 놀라고 있던 중, 언니가 다시 말을 꺼냈다. 


혹시 힘든 일 있음 언니한테 연락해.

나는 늘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언니의 저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나에게 친언니가 생긴 느낌이었다. 늘 멀게만 느껴졌던 언니였는데, 언니의 저 말이 정말 너무 든든하게 느껴졌다. 늘 승승장구하는 모습, 똑 부러진 모습, 덤덤한 모습들만 보여줬던 언니라 해서 언니의 인생이 늘 평탄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하진 않았으리라. 사실은 언니가 언니의 힘든 이야기를 꺼내 들려주지 않았더라도 모든 인간은 각자의 괴로움과 슬픔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동안 언니의 겉모습만 보고 언니에게 행복 프레임을 씌워왔던 것이다. 그동안 언니와 내가 무척 가깝게 지내왔던 것은 아니었기에 언니가 내게 저 말을 꺼낼 때도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언니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결국 언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생은 완벽하게 희극 혹은 비극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을 것이다.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재벌과 항상 반짝이게 빛나는 스타들의 삶도 들여다보면 결국 슬픔과 기쁨의 연속이다. 어차피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희극과 비극이 혼재된 삶을 살아간다. 아마도 마지막 눈 감기 전 스스로가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달리지 않았을까? 비록 힘듦의 연속일지라도 눈감는 순간엔 결국 나의 삶은 온전히 행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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