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일 때나 경험할 줄 알았던 허들을 프리랜서를 시작함과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다. 6년차인 나는 어디선 초급으로 어디선 중급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괜찮은 프로젝트들은 거의 '중, 고급'을 선호하기에 내 연차는 애매한 허들이 생기곤 한다. 물론 프리랜서를 막 시작한 단계이기에 안면을 튼 고객과 인맥이 더 많아지면 추후 상황은 많이 바뀔 것이리라. 하지만 결국 이런 허들을 앞으로 최소 3번은 건너야 할 것 같아 머리가 아파온다.
프리랜서는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어 프로젝트 인력을 구하고 그에 따라 금액도 나뉜다. 수준을 구분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긴하지만 도통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초급/중급/고급이란 결국 '실력'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실력'이 아닌 '연차'가 기준이다. 대략 1~6년 차는 초급, 7~9년 차는 중급, 10년 차 이상은 고급 이렇게 나뉘는 듯하다. 차라리 기업에서 정직원을 뽑을 땐 서류전형에서 포트폴리오를 보지만 프리랜서는 애초에 연차가 그들 기준에 못 미치면 포트폴리오도 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연차를 기준으로 하다 보면 제대로 된 실력으로 인원을 구성하기 힘들다. 연차로 실력이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된 인력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는 스스로를 굳이 나누자면 중급(더 정확힌 중고급)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물 경력 안 쌓으려고 힘들다는 에이전시를 5년간 다녔다. 심지어 다니는 내내 힘들다는 프로젝트나 팀에 스스로 지원하며 힘들게 쌓아온 경력이다. 쌓아온 커리어와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하지만 일단 기회가 주어져야 증명도 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물론 연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명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짬바는 존재하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연차가 전부도 아니다.
속된 말로 나이를 똥꾸멍으로 먹었단 말이 있듯 연차도 그런 식으로 쌓아온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물론 현실적으로 1년 차와 8년 차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정도는 하다못해 자리만 지켰어도 보고 들으며 쌓은 게 훨씬 많을 테니. 하지만 어느 정도 연차를 쌓은 5-6년 차와 7-9년 차는 생각보다 차이가 크지 않다. 오히려 들인 노력과 참여도, 쌓은 경험에 따라 5-6년 차가 더 나은 경우도 많이 봤다. 노력한 1년 차가 3년 차를 따라잡는 경우도 더러 봤는데 어느 정도 일머리가 쌓인 5-6년 차가 7-9년 차 따라잡는 건 더 쉬울 것이다. (심지어 10년 차 이상도 봤는데 이런 경우엔 그동안 어떻게 자릴 지켜오며 밥벌이를 해온 건지 솔직히 신기할 정도다.) 10년 차 이상과 20년 차 이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짬이 찰 수록 짬이 대변할 수 있는 영역은 줄어든다. 솔직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연차가 실력을 대변할 수 있는 시기는 '초급'이 유일한 것 같다.
5-9년 차는 한창 최고로 바쁘게 일할 시기이다. 동시에 더 박차를 가해 성장하거나 그저 현상유지에 만족하며 요령만 익혀가는 쪽으로 태도가 나뉘는 시기이기도 하다.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 온 7-9년 차는 업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플레이어이자 멋진 선배가 되지만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 한다. 익숙함에 익숙해져서, 열정이나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등 관성을 이겨내며 노력해야 하기에 날이 갈수록 연차가 대변할만한 실력을 갖추기란 더욱 고되고 어렵다.
그동안 수많은 고객사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참여하면 계약 연장 제안으로 이어진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몇 년을 프리랜서를 해오면서도 연장 제안 한번 받아보지 못하거나 오히려 조기 계약 종료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헉소리 나게 존경스러운 선배들도 많았지만 4-5년차였던 나보다 못하다 싶은 8-10년차도 봤다. 그러다보니 내 입장에서는 그놈의 연차로 까일 때마다 '아 일단 포폴이나 보시라고요! 나랑 일해보고 말하시라고요!'하고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 모두 일단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야 내가 증명을 하던가 하지. 또한 프리랜서는 정직원보다 페이가 높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괜찮은 인력들은 놓치고 엄한 사람들에게 높은 페이를 주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닌 것을 괜히 속이 쓰리다. 왜 돈들여서 이렇게 사람을 뽑지? 아, 뽑는 담당자 주머니에서도 안나가서 그런가?하고 비꼬고 싶지만 그저 그들은 사람보는 눈이 없거나 귀찮거나 혹은 N년차라는 안전빵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 거겠지.
매일 노력해도 그와 비례하여 늘지 않는게 실력이다. 그리고 같은 연차라도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그 판단을 연차에 기댄다는 것은 결국 모두가 동일한 환경과 조건에서 매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가정하에서만 겨우 가능한 것 아닐까? 따라서 일을 맡길 누군가를 뽑을 땐 양보다는 질에 집중해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