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N WHO WALKED BETWEEN THE TOWER
엄마의 연년생 언니(너희에게는 이모지)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경쟁의 대상이었단다. 아빠는 무엇이든 당연히 언니에게 주었고, 둘이 같이 나선 마실길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한 것도 언니였어. 엄마는 그저 평범한 곱슬머리의 여자아이였지. 언니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터라 부모님과 곧잘 부딪히기도 했지. 그런 언니를 보며 엄마는 더 순응적이고 공부에 매진하는 아이가 되었단다. 학교에 들어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상을 받아오면 그것이 유일한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었단다. 엄마는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는데, 시골집 마당에 서면 엄마와 일이등을 다투는 친구의 방 창이 보였단다. 엄마는 항상 그 친구의 방에 불이 꺼지기 전에는 연필을 놓지 않았어. 초등학생 때부터 그랬으니 알만하지?
대학을 가야 할 때가 되었어. 그런데 막상 대학을 지원하자니 엄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겠더라. 머릿속은 교과서의 지식으로 꽉 차 있었는데 마음은 텅 비어있었던 거야. 그때부터 엄마의 방황은 시작되었단다.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재수를 하고, 또 열정 없이 대학 생활을 보내게 되었지. 그러다가 엄마는 혼자서 훌쩍 한 달 동안 인도 여행을 다녀왔단다. 인도는 엄마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어. 엄마는 지금껏 행복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살았는데 왜 항상 부족해하며 힘들어했을까? 왜 내게 있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없는 것을 탐내며 살았을까? 지저분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엄마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지닌 인도 사람들에게서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현실에 만족하며 욕심 없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고, 비우면서 채워지는 마음의 충만을 느꼈단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밤새 가슴 설레며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등을 읽었던 소녀다운 아이였어. 그림자를 남기며 둥둥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시를 쓰곤 했던 낭만적인 소녀였어. 산책을 하며 머릿속에 스쳐가는 문장들을 행여 놓칠까 봐 메모에 남기곤 했던 마음 여린 아이였지. 엽기적으로 공부에만 매달린 재수 없는 아이는 아니었단 말이야.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알아가고 있단다.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
엄마가 이 책에 나오는 필립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를 알겠지? 줄을 타며 재주를 부리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절대 아니지만 줄타기 곡예사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을 흔치 않을 거야. 만약 네가 "저는 줄타기 곡예사가 될 거예요."라고 선언한다며 엄마는 자리를 펴고 누울지도 몰라. 하지만 필립은 단지 줄을 타며 즐거워하는데 멈추지 않았어.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면 열정이 생기나 봐. 또 열정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함께 가지고 오는 것 같아.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세계에서 몇 번째로 높은 빌딩에 올라가는 게 목표가 되지도 하지. 타이베이 101에 갔었던 것처럼 말이야. 흔히들 높은 빌딩을 보며 감탄하고 오르고 싶어 하지만 필립에게는 그 건물 사이의 공간이 보이는 거야. 그 공간을 걷는 것이 목숨과 바꾸는 일일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두려움도 이겨내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필립이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걷는 동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조마조마했단다. 그런데 거기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필립의 모습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아들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오로지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길 바란다.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진정한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느끼거라. 엄마는 너무 먼길을 돌아와 후회라는 긴 그림자를 남겼다만 너의 그림자는 조금이나마 짧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