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ear and dear May 09. 2024

부모의 자리

자각과 이해

부모는 부모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슈였던 티브이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며 가장 감명 깊은 말이었고

지금도 자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말이다.

부모가 부모의 자리에 있지 못할 때, 어떤 어려움이 생기는지

자녀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어떤 마음이 드는지 충분히 봐왔던 터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어려웠던 관계 가운데 어린 시절의 무기력했던 내가,

말을 안 하는 것으로 나를 지켜왔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2박 3일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 당일 병실 상황에 따라 병상이 랜덤으로 결정되는데,

운이 좋게도 넓은 창가 자리였고, 모두가 커튼을 끝까지 친 상태로 고요했다.

아이들을 낳고 하루라도 조용히 편하게 혼자 자고 싶다! 생각만 했지, 이렇게

강제 분리와 자유를 얻게 되다니, 조금 서글프긴 했지만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아니, 이렇게 홀가분하고 행복하다고?'

아프니까, 마땅히 누려도 되는 휴가라 더욱 달콤했다.

돌아보면 언제나 쉬어가는 법을 알지 못해, 아프고 나서야 조금 쉴 수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쉬어도 된다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보호자를 자청해 준 사촌언니를 하루 만에 돌려보내고 묵언수행을 하며

노트북과 책 한 권만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혹시... 며칠 더 입원을 할 수 있을까요?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돌아가면 쉴 수 없어서요"

아이 엄마로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께서 엄청난 사명감을 띤 표정으로

"원래는 안 되는데 연휴가 껴 있어서 가능할 것 같아요! 제가 알아볼게요!"

엄청난 위로와 동지애가 느껴졌다.

그렇게 3일을 더 입원할 수 있었다.

주말이 되어 4인실이었던 병실에서 하룻밤을 혼자 보냈는데

하루 종일 촉촉하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삼시 세끼를 누군가 챙겨주고, 아무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아도 되는

완벽한 조건에서 오후 4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잠을 잤다.

내 기억 속 가장 완벽한 휴식의 날이 되었다.   

그날 창가에 내리던 빗방울 사진은 아직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집에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 어린이집 상담일이었다.

아이가 최근 들어 소리를 지르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

어머니가 아프신 이후에 더 그렇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엄마인 나는 좀 용감해진다.

육아 우울증으로 상담센터에 다니며 도움을 많이 받았던 터라

망설이지 않고 가까운 유아심리발달클리닉에 초기상담을 의뢰했다.

타고나게 예민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편이라,

아이들의 어려움도 잘 캐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하기만 했던 둘째의 새로운 모습들이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그 중심에는 나와의 안정된 애착이 있었다.




꽤 오랜 기간 개인상담을 이어가며

가장 큰 변화는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자주 뒤를 돌아보며 후회하곤 했는데,

이젠 지금부터 다시 잘하면 되지! 하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만 5 ,3세 두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꼭 그 나이로 자주 돌아간다.

결국 난 육아우울증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시 한번 엄마인 나를 키워준 셈이 되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받았으면 좋았을 사랑과 들었으면 좋았을 말들을

아이를 통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




나는 왜 그때 배우지 못했던 걸까?

이제는 그때의 부모님이나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나보다 훨씬 어리고 힘들었을 부모님을 생각한다.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해해 보자고 다독인다.  

부모님의 부모님을 이해해 본다.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유연해진 마음으로 여러 마음을 보듬는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얼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