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5월, 나에겐 가장 소란한 달이다.
안 그래도 챙길 것이 많은 가정의 달에 남편과 둘째의 생일이 하루 차이라, 시댁 식구들과의 저녁 식사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어버이날 식사가 불과 일주일 전이었는데 멤버도 메뉴도 꼭 같은 식사자리에 조금 불평이 나오지만 이 집안의 기념일 중 제일은 생일이고, 되도록 당일에 성대하게 챙겨야 한다.
아이들을 재우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폐렴진단을 받은 첫째 아이와 오늘 생일을 맞은 둘째의 잠자리를 분리해 놓고 누운 새벽, 이제야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고단한 삶이 나만의 것이겠냐만은 조금 슬프기도, 헛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두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는 남편을 낳아주신 시어머니, 그와 작년에 재혼한 새시아버지가 함께 오셨다. 아이들이 둘이 되고 어지간한 대소사는 집에서 치르고 있는데 행사 주최자인 어머니께서 반찬이며 과일까지 어지간한 준비는 넘치게 해 오시고, 나는 밥과 미역국을 준비하면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 급식소와 식당을 운영하셨던 어머니는 살림도 요리도 수준급이셔서, 종종 설거지도 해주시고 적당히 머물다 가신다.
아이들이 10살이 될 때까지 생일떡을 해주어야 잘 산다고 믿고 실천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말릴 길도, 말릴 사람도 없다는 것을 10년 차 며느리인 나는 잘 알고 있다.
연애 시절부터 부성애 관련된 것만 보아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남편의 친아버지는 상처도 사랑도 주셨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해 보지만 그의 상처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사별을 하신 것은 아니라 살아계시지만 모르는 척 살아간다. 이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장남은 얼마나 자주 그를 떠올릴까,
어머니의 재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나와 남편이 연애를 시작할 때쯤 10년 정도 이어진 첫 재혼생활(?) 이 끝이 났다고 들었고 내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을 어머니는 모르신다. 비밀도 많고 말고 많고 탈도 많은 이 집안의 며느리로 사는 것이 적응될 때 즈음
생각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시어머니의 재혼으로 그에게 새아버지가 생겼다.
정작 남편을 낳고 길러주신 친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상처 많은 그가 아버지가 될 동안 곁에서 함께 흔들리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에게 이젠 새시아버지라니, 갑작스러운 이 사태에도 거부도 반대도 하지 않고 덥석 아들 노릇을 자처하는 남편을 보는 나는 정말이지 대신 화를 내고 엉엉 울어주고 싶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평생을 함께 하신 것처럼 앉아계신 두 분 앞에서, 그 장단에 맞추어 아들 노릇을 열심히 하는 남편 앞에서, 할아버지는 왜 할머니랑 같이 살게 된 거냐고 묻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 가뜩이나 유연하지 못한 나에게 더 이상의 이벤트는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그들의 생일.
그게 가장 큰 이벤트라고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