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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채집가 Jan 27. 2022

나는 생존자입니다

매일매일,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 

오늘도 광주에서 짓고 있는 고층 아파트가 무너졌다는 속보가 뜬다.

누군가의 아버지가, 누군가의 아들이, 남편이.... 속수무책으로 콘크리트 더미 속에 갇혔다.

그들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들에게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불패의 나라에서 부의 상징인 고층아파트, 그 견고한 신뢰의 기둥이 무너졌다. 

정직하지 못한 건설 과정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일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수일간 버티던 생존자가 들것에 실려나올 때, 마구잡이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생중계하던 시절이다. 어린 시절 아련한 뉴스의 장면으로 남아 있는 기억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고 선언한 '산만언니'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어떡하다가 그 시간, 장소에 있었을까'하는 노골적인 호기심과 '어떻게 운이 좋았으면 거기서 살아남았을가'하는 천박하고도 가벼운 호기심을 너머 이 책은 성장과정을 들려준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 묻히기 전부터 시작된 개인사적 불행과 가족들의 삶, 불행, 그리고 그로 인한 아픔들. 


재난의 이야기 너머에는 일상 가정 풍경이 깔려있다. 

'어려서 너무 큰 불행에 피폭당해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잃었'던 주인공은, '불행이라는 게 무서울 정도로 개별적이구나'를 어릴 때부터 이미 깨달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자그락자그락 끊이지 않는 가정의 불화. 이것은 사고 생존자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저 40대 중반 여성의 서사로 읽히기 시작했다. 

사고를 빼고 읽어도 충분히 동류의식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한데, 사고마저 겹쳐지니 그 삶의 무게가 더 휘청인다. 하지만 저자는 '내게 일어났던 불행들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쓴다. 이해하면서 조금은 가벼워지고, 잊고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여태 살아오면서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이 전부 행복한 날들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냥 이 한줄만 봤다면, 그 한줄을 제대로 읽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류의 막연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글줄은 차고 넘치니 말이다.

하지만 '삼풍 생존자'로서, 대한민국에서 40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오래 곰삭은 그의 아픔에서 길러온 그 맑은 한 줄을 읽으니 머리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의 시작이 아닐까. 

오늘도 나의, 그리고 우리의 행복을 비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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