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채집가 Feb 04. 2022

작별하지 않는다

우리는 생살을 찔러야 한다, 3분에 한번씩 

한강,

이번에는 제주도 4.3을 들고 왔다.


주인공 경하에게 어느날 인선의 문자가 도착했다.

'와줄 수 있어?'

가까스로 살아내고 있는 것같은 경하는 인선의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선 곧바로 제주에 있는 인선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감독인 인선은 이번에 경하의  꿈 속에 나오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영화를 찍기 위해

나무를 다루다가 그만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고 말았다. 손가락의 신경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3분에 한번씩 바늘로 생살을 찔러 피를 내야 한다.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신경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인선은 자신의 집에 있는 앵무새를 살려야 한다며, 경하에게 지금 당장 제주의 집으로 가줄 것을 부탁한다. 주인공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제주로 향한다. 


마침 제주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으며 인선이 타고 온 비행기가 마지막 비행기다. 중산간에 위치한 인선의 집으로 가기 위한 버스마저도 마지막 버스이다.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눈 위에 넘어지면서 핸드폰마저 잃어버린다. 경하는 이제 완전히 홀로 존재하게 된다. 

눈 내린 제주의 중산간, 불씨도, 전기도 없이 그저 홀로다. 

그런 주인공에게 인선이 찾아온다. 


삶도, 죽음도 경계가 모호하다. 

앵무새도, 인선도, 경하도, 그 누구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이다. 

죽은 것들이 일어나 춤을 추고 이야기를 한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이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1948년 정부가 세워지며 좌익으로 분류돼 교육대상이 된 사람들이 가입된 그 조직에 대해 나는 알고 있었다... 쌀과 비료를 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도 다수였다. 가족단위로도 가입되어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포함되었고, 1950년 여름 전쟁이 터지자 명단대로 예비검속되어 총살됐다. 전국에 암매장된 숫자를 이십만에서 삼십만 명까지 추정한다고 했다. 그해 여름 대구에서 검속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대구형무소에 수용됐어.  

경산에 있는 코발트 광산이야. 약 삼천오백 명이 이곳에서 총살됐어. 대구형무소 재소자, 대구보도연맹 가입자, 경산경찰서 인근 창고에수용됐던 경북 지역 가입자까지."


그렇다. 제주 4.3으로 간단하게 이름붙인 수많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말한다. 역사의 상처에 3분만에 한번씩 바늘을 찔러 피를 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버린다고. 

과거의 고통과 절망을 말할 수 있는 자유마저 막혀버린 사람들에게 비로소 말을 하도록 만들어, 피를 통하게 하려는 작가의 안간힘을 만나게 된다. 인선의 엄마로 상징하는 사람들은 당했으되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아팠으되 울지 못한 사람들이다. 죽었으되 차마 죽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고 잃었으되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의 애통함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총살당하고 언니와 둘이 그 시체를 찾기 위해 눈 덮힌 시체의 얼굴을 닦아내며 확인해야 했던 어린 소녀의 꿈자리는 늘 신산스러웠고, 이부자리 아래에는 얇은 톱을 놓아두어 그 꿈을 막아주길 밤마다 기원했다.  


경산 코발트에서 죽음도 미처 확인하지 않고 스러져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 삶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손가락이 떨어져나간 상처를 바늘로 찌르는 아픔이다.  사실 이렇게 한 죽음, 한 삶을 진득하니 바라봐야 아프고, 피가 난다. 그래야 잊지 않는다. 신경이 끊어지지 않는다.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대신해 이렇게 생살을 파서 상채기를 내고, 3분만에 한번씩 바늘로 찔러준 소설가 덕분이다.

대신 우리를 위해 피흘리고, 눈물흘려준 문학인들에게 감사드린다. 




 


작가의 이전글 미싱타는 여자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