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입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사회적 지위를 말하기도 하고 이름을 말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 관계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당신들의 지영이'라고 말이다.
요즘 구술사의 특성은 멀리 주제를 따라 나아가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책은 반갑다. 역사적으로 도드라진 삶이 아니더라도, 그 아래 도도하게 흐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통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영이'의 친정엄마와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따스하다.
굴비 엮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 친정엄마는 씩씩하다. 딸들을 비롯해 주변에 나누는 손이 크다. 아들이 큰 사고로 사경을 헤매는 일도 있었고 사람좋은 남편때문에 집도 땅도 돈도 잃어야 했던 세월이 있었다.
딸 지영이는 이런 엄마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선선한 그 거리가 좋다.
며느리 지영이에게는 시아버지가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가면 "아버지가 옷 하나 사주까?"물으시고, 며느리가 좋아하는 맥주를 상자째 실어주시기도 한다. 글 쓰는 며느리를 위해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며느리 대신 탐구하기도 하시는 시아버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도 꼬추가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장담하시고, 한없이 낙관적이다. 노래와 춤, 장구를 좋아하신다. 음식 솜씨도 좋으시고 손도 크다. 며느리에게 '우리 배지영이'라고 하신다.
전라도 정서일까? 경상도에서 난 이런 정서와 감성을 만난 적이 없다.
남이라도 없다.
그렇다면 전라도에서 한번 살아봐도 좋을 것같다. 참 따스해보인다. 격의없고 유머러스하고 여유가 있다.
낙관하는 시선과 '배지영이'라고 불러주는 감성도 좋아보인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으니까, 배지영이네 가족을 통해 잠깐 상상을 해보았다.
조금 더 신나고 조금 더 힘들거같다.
넉넉한 어른들의 무릎에서 자라나 어른이 된 지영이.
관계로 자신을 설명할 만하다.
적당한 온기가 베어 있어 읽는 내내 좋았다.
참, 요즘 책들은 디자인도 참 이쁘지. 색으로 구획해놓은 것은 신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