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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채집가 Apr 29. 2020

슬기로운 감빵생활vs의사생활

감빵에서 병원으로 나온 슬기로운 인생들

응답하라 시리즈에 열광했던 나이기에,

신원호 사단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엄청난 기대를 가졌다. 때마침 코로나 정국 아닌가. 

바깥을 활보하지 못할 바에,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으면 정주행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시작해보자!

(신원호를 중심으로 한 이우정 작가, 정보훈 작가 등 응답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 주역들을 신원호 사단이라 불러본다) 




어, 그런데 왜일까.

몇 회가 지났지만 신원호 사단 특유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초반부여서일까. 쌍문동, 서부구치소에서 그렇게나 밝게 빛나던 그의 연출력이

병원에 오면서 갑자기 시들해졌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정주행하면서 그 원인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인물과 스토리의 디테일을 빛낼 수 있는 것이 최대 강점인 사단에게 병원은,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인 병원은 그 공간 자체로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와 눈물과 인생과 바이러스, 모든 것이 엉켜있는 공간이다. 게다가 우리는 너무 많은 학습을 해왔다. 종합병원, 김사부 등등 이미 시리즈로 만들어진 드라마만 해도 참 많다. 거기엔 저마다 조금씩 다른 방점이 찍혀 있다. 이 시대 의사의 존재에 대해 묻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의사들의 러브 스토리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도 있다. 병원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환자의 이야기에 눈물을 쏙 빼는 드라마,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권력투쟁 등, 병원은 이미 드라마의 단골 배경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병원은 삶과 죽음이 생생하게 맞닿아있는 곳이다. 삶의 영역에 놓여있던 생명이 눈 깜짝할 새 죽음으로 건너가버린다. 남겨진 사람은 또 얼마나 슬픈가. 그 스토리만 해도 우리에겐 버겁다. 


신원호 사단은 병원으로 갔다. 왜 병원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의학 드라마의 영향으로 우린 영어로 된 의학용어 몇개 쯤은 이미 익숙해졌다. 어떤 포인트에서 수술을 하고 수술 결과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자는 울고, 의사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돈 문제는 또 어떤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 모든 것을 드라마에 담으려 하고 있다. 

외모와 인간성, 성적까지 그 모든 것이 최상인, 우정마저도 대한민국 0.1%인 의사 5인방. 이들이 주인공이다.  서울대 의대를 나왔으며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도 있다. 거기에 인간성은 물론이고 음악 실력도 뛰어나다. 놀 줄도 안다. 캠핑도 다니고 밴드도 한다, 그 바쁜 와중에.     

병원장의 막내 아들, (어려운 사람에게 병원비를 마구 대주는) 키다리 할아버지, 몹시 어려운 수술, 의사들 간의 러브스토리 등 다른 드라마에 나오는 요소들은 물론 등장한다. 


다시, 나는 감빵으로 돌아간다. 감빵은 클리셰는 있을지언정 병원만큼 자주 변주된 적이 없다. 기껏해야 단편적인 장면들 뿐이었다. (구치소에 수감될 때 항문 검사를 체중계처럼 생긴 기계로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감빵처럼 단순한 공간에선, '배식~~~~!'이라는 외침조차 웃음 소재가 된다. 등장 인물도 단편적이지 않다. 

주인공 제혁에겐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지만 알고보면 토막살인을 한 사람이다. 감옥 안에 있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대신해 들어온 성실한 가장도 있다. 뽕쟁이도 감초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이 풍성해질수록 새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감빵생활은 그리 무료하지 않다. 그들 사이의 끈끈함이 얼마나 깊은지, 아주 잠깐 '감빵생활'을 슬기롭게 한번 해보고싶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감빵에선 과도하게 불공정이나 부의 편중 등 사회적 문제를 들추려 하기보다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녹여서 보여준다. 

특히 김제혁의 캐릭터는 신원호가 사랑하는 캐릭터이다. 특정 한 분야에만 천재이고, 일상에선 거의 바보 수준의 적응력을 보이는 캐릭터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지만 밉지 않다. 허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챙겨줘야 할 보통의 친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 정우가 그러했고 바둑천재 천재 바둑기사 택이가 그랬다. 특히 제혁이는 택이와 무척 닮아있다. 오로지 야구와 바둑에만 집중해서 나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제혁이는 나름의 통찰력과 정의감을 탑재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보자.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입학, 졸업한 이익준 교수는 유머감각까지 완벽하다. 안정원 교수는 인류애에다 착함을 겸비했으며 채송화 교수는 미모와 실력과 부지런함과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신원호 사단의 이야기가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에서 몇 발짝 떠나가버린 느낌이라, 섭섭하다. 드라마 소개 기사 제목에는 '배경만 감옥에서 병원으로 바뀐'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마음의 거리는 그렇지 않다. 단층 감옥에서 20,30층 병원으로 치솟은 느낌이고 감옥소에서 목공장에서 받는 하루일당에서 의대 교수 연봉만큼이나 멀어진 느낌이다.   

그래서 병원을 배경으로 아무리 웃음 포인트를 넣어도 웃음이 나지 않고 빛이 나지 않는다. 응팔 시리즈에서 산처럼 쌓인 콩나물에서 옛 시절을 회상하게 했고, 이불 밑에 묻어둔 밥 한그릇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감빵에는 더욱 소소하다. 라면 물을 끓이기 위한 전략회의가 탈옥처럼 그려지기도 했고, 닭 반찬과 조류독감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사회성있는 웃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직 어느 지점에서 따스하게, 또는 시니컬하게 웃어야 하는지 아직 찾지 못했다. 다만 억지로 음악을 통해 우리를 1990년대로 소환한다. 응팔은 전체적으로 극의 배경이 1988년, 1994년, 1997년이라 음악과 정서가 꼭 맞아떨어졌다. 이 드라마에선 현재를 배경으로 하되 우리를 가끔씩 90년대로 몰아넣는다. 음악은 이미 응팔 시리즈에서 익숙해졌고, 노래 실력은 (채송화가 음치라는 설정으로) 고만고만하다. 어느 부분에서 감동받아야 할까 고민스럽다. 


적어도 슬기로운 시리즈에선 병원보다 감빵이 따스하다. 병원보다 감빵이 풍성하고, 나지막해서 우리와 더 닿아있는 느낌이다. 병원에 비해 단조로운 인물 구성이 오히려 하나하나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병원은 매회 너무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등장해서, 감정을 채 이입하기도 전에 사라진다. 그들이 지나고 난 곳에는 오로지 의사 5인의 우정만이 남아있다. 


억지로 소환하는 레트로 감성에 기대어보지만, 그마저도 빈약하다. 

적어도 지금까진 그렇지만, 앞으로 달라지길 기대한다. 병원이 감빵보다 더 따스하고 그리운 공간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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