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 글은 기억에 남고 싶다
느좋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지금 언급하기에도 유행이 많이 지난 단어이긴 하지만 '느낌이 좋은'이라는 뜻이란다. 그땐 무슨 이상한 뽕이 가득 찼는지 모르겠는데, 멋진 카페를 가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일단 그냥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있어빌리티? 트렌디남? 좋은데?' 그래서 한낱 카페를 찾아가는 거지만 속으론 무슨 전쟁터라도 나가는 것 마냥 비장했었다.
한창 느좋 카페를 찾아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이제 막 입소문을 타려고 하는 카페를 간 적이 있다. 슬슬 카페가 다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이 들 때쯤 발견한? 아니 발견당한? 카페였다. 나를 맞이해주는 건 털보 사장님의 웃는 얼굴. 하지만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마다 깜빡이 없이 튀어나오는 처참한 꼬라지에 이미 수십년간 단련되어 있었던 나는, 아우 씨. 개 쫄았다. 하... 미리 검색해보고 올 걸.
카페는 그야말로 잡동사니의 향연이었다. 그렇지만 잡동사니조차 하나하나의 어긋난 어울림을 마음속에서 재배치해보고 싶게 만드는 욕망을 자극하는 그런 묘한 매력의 카페. 게다가 뭐니 뭐니 해도 산적 같은 수염을 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손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춰주는 사장님의 모습이야 말로, 이 카페의 정체성이었으리라.
솔직히 여긴 예쁘지 않다. 아기자기하게 깔려있던 아이템만 빼면, 이게 카페가 아니라 동네 할아버지가 마실 나왔다가 막걸리 한 통을 사며 500원을 깎네 마네 할 것 같은 슈퍼마켓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낯선 공간. 하지만 그 공간이 나는 싫지 않았다.
그곳은 문경에 있는 '카페 선일'이었다. (지금은 더 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다.)
어떤 공간은 한 장의 사진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어떤 공간은, 사진 한 장으로는 도무지 다 설명되지 않는다. 소위 예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요즘에는 예쁜 공간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게다가 죄다 J가 인테리어한 건지, 뭐 이런 것까지 계산했나 싶을 정도로 테이블 위의 물건 하나까지 철저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예뻤던 공간의 이름은 금방 흐려진다는 점이다. 분명 좋았는데, 다시 가고 싶으냐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다.
반대로 처음 봤을 때는 아주 강렬하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문득 생각나는 공간이 있다. 태어나긴 한 건지도 모를 내 여자친구를 데려가고 싶고, 그 핑계로 다음 계절에 다시 가보고 싶고, 짝녀가 자주 가던 빙수집을 처음 발견한 것처럼 괜히 한 번 더 들르고 싶어지는 곳들이다. 나에겐 '카페 선일'이 그렇다.
제목에서는 예쁜 공간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했지만, 물론 기억에 남는 예쁜 공간도 많다. (독자들의 관심에 목이 마른 내 글을 누구라도 봐줬으면 하는 어그로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단순히 예쁜 공간과 다시 찾고 싶은 공간 사이에는 작은 간격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간격은 대개 인테리어보다 더 깊은 곳에서 생긴다.
예쁜 공간은 시선을 붙잡는다. 하지만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은 시간을 붙잡는다. 그곳에서는 이상하게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된다. 한 바퀴 둘러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보면 말년병장이 엉덩이 벅벅 긁으며 부대 안을 어슬렁거리는 것 마냥 그 공간 안에서 머무는 일이 먼저가 된다. 그리고 나올 때는 “예쁘다”보다 “다시 와도 좋겠다”는 말이 남는다.
그래서 결국 공간의 매력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보다 ‘어떤 기분으로 머무르게 했는가’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예쁜 공간은 감탄을 남긴다.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은 핑계를 남긴다.
다음에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면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누구를 데리고 가면 그 사람도 좋아할 것 같다.
근처에 가게 되면 잠깐 들르고 싶다.
이런 작고 사적인 마음들이 쌓일 때, 공간은 하나의 장면이 되고, 장면은 비로소 브랜드가 된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기억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다. 사람은 가장 정확했던 정보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조금 편안했고, 조금 기대했고, 잠깐 더 머물고 싶었던 순간을 오래 품고 산다.
그래서 브랜드 공간은 예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시선을 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의 시간을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한 번의 방문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다음 방문의 이유를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예쁜 공간은 사진첩에 머문다.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은 마음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자기가 편안했던 장면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