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AI, 너 잘났다
요즘 사람들은 AI를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꽤 많이 좋아한다. 아니, AI가 발달하면, AI가 인간을 흉내내게 될 거고, 결국 인간이 되려고 하는 AI도 나올거고, AI인지 아닌지도 구별이 안 되는 나는 AI와 결혼하게 될 거고, 그럼 나랑 AI 사이에서 사이보그가 태어나게 될 거고, 그 사이보그는 매년 내 생일마다 새 그래픽 카드를 선물해줄거고, 사람들은 그걸 A-효도라고 할 거고... 소름... 망상해버렸다...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나는 원래 새 툴이 나오면 일단 만져보는 편이다. 마케터가 대개 그렇다. 새로운 플랫폼이 나오면 계정을 만들고, 새로운 기능이 나오면 눌러보고, AI가 뜨면 일단 제목부터 뽑아본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건 좀 신난다. “오, 이거 생각보다 잘하는데?” 이 말을 하루에 세 번쯤 할 수 있는 산업에 살고 있다.
AI도 그랬다. 자료를 요약하게 하거나 회의록도 맡겨봤다. 매번 시작부터 "와, 너 정말 핵심을 찔렀어." 이럴 때마다 진짜 찔러버리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사람보다 낫다. 아니 꽤 자주 낫다. 이쯤 되면 이걸 쓰는 게 맞는 건지 아닌지 어이가 없기도 하다. 인간은 가면 갈수록 귀찮은 걸 싫어하는데 AI는 점점 귀찮은 걸 잘한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좋다 이거야. 근데 분야가 바뀌면 내 태도도 바로 바뀐다. 솔직히 말해, 릴스 자막 하나 틀리면? '뭐 대충 뜻만 통하면 되지' 하고 끝이다. 광고 문구가 어색하면 '수정', '재수정', '재재수정', '최종', '최최종', '최최최종', '진짜 최종', '제발 진짜 최종' 이러면서 수정하면 끝이다. (사실 끝은 아니다. 끝이 안 난다. 살려줘...) 그런데 계약서, 돈, 건강, 아이 공부처럼 실수의 뒷수습이 귀찮음을 넘어가는 순간, 나는 갑자기 어디 유서 깊은 가문에 몇 십 년째 내려오는 무슨 김씨 무슨 공파 몇 대손 족보를 줄줄 꿰고 있는 보수적인 집안 으른에 빙의한다. 아까까지 “AI 진짜 미쳤다” 하던 인간이 갑자기 “잠깐만, 이거 확실해?”를 세 번 네 번 묻기 시작한다.
이게 핵심이다. 사람은 AI를 싫어해서 망설이는 게 아니다. 자기 인생이 걸리면 원래 겁이 많아진다.
그래서 신뢰가 중요한 산업의 AI 브랜드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들에게 고객이 제일 먼저 묻는 건 얼마나 혁신적인지가 아니다. “이거, 믿어도 되나?”다.
문제는 많은 AI 브랜드에게 이 장면은 일종의 게임 튜토리얼이다. 실컷 열심히 만들어놓은 걸 그냥 건너뛰어버린다. 그리고 바로 본게임으로 들어간다. 대개 첫 문장부터 자신이 얼마나 빠르고, 얼마나 정확하고, 얼마나 자동화되었는지를 말해버린다. 한마디로 아주 유능한 신입사원처럼 자기소개를 한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열심히 만들었으니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법률, 금융, 헬스케어, 교육처럼 실수의 가격이 비싼 분야에서는, 그 유능함이 가끔 성급함처럼 들린다.
예를 들어 리걸테크라면 “몇 초 만에 계약서를 검토합니다”도 좋지만, 사람이 진짜 궁금한 건 그다음이다.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다 따지고 보면,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여러분들의 고민, 한 방에 해결!"이다. 무슨 90년대 세탁기 세제 광고도 아니고. 어디까지 자동으로 봐주고, 어디부터는 내가 다시 봐야 하는지가 없다.
핀테크도 비슷하다. '더 빠른 송금', '더 쉬운 투자', '더 똑똑한 분석'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지 돈 아니라고 쉽게 얘기하네? 그게 니 돈이라도 그냥 덥석 이용할래?(라고 할 뻔.) 내 돈 얘기가 나오면 사람은 안전을 먼저 본다. 속도는 그다음이다. 세상에 빠른 건 많다. 문제는 빠르게 잘못되는 것도 빠르다는 점이다.
헬스케어는 더 예민하다. 건강 앞에서 사람은 혁신에 감탄하기 전에 표정을 관리한다. “오, 신기하네”보다 “근데 이거 지어낸 거 아니야?"가 훨씬 빨리 나온다. 건강 정보는 원래 검색만 해도 병이 세 개쯤 추가되는 분야 아닌가.
그래서 신뢰가 중요한 산업의 AI 브랜드는 잘난 척을 조금 덜 해야 한다. 기술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기술을 말하는 순서가 틀렸다는 얘기다. 먼저 말해야 하는 건 우리가 얼마나 똑똑한지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까지 책임 있게 도울 수 있는지이다.
이런 문장들은 화려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만 말하면 동네 제일가는 팔랑귀인 우리 엄마도 안 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은 이런 심심한 문장에서 브랜드의 수준을 읽는다.
그리고 신뢰는 원래 쪼~금 재미없게 생겼다. 그래서 젠장맞게도 훨씬 더 비싸다.
나는 AI를 좋아한다. 앞으로도 더 많이 쓸 것이다. 아마 더 놀랄 일도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내 삶의 중요한 부분에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이거, 진짜 믿어도 되나.
결국 고객은 기술을 쓰는 게 아니다. 기술에게 자기 불안을 맡기는 것에 더 가깝다. 아마 신뢰가 중요한 산업의 AI 브랜드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원래 사람은 신기한 기술을 구경할 수는 있어도,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결국 믿음직한 쪽으로 간다.
그리고 믿음직한 사람은 대체로 회의 때 제일 많이 떠드는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