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 저, 마음산책 출판사
신간에 별 관심이 없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귀한 인연 때문이다. 길에서 요구르트를 판매하면서 책을 늘 읽고 있었던 그의 모습을 수년간 지켜보아 왔는데, 급기야 같이 책을 가운데 놓고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로마에 사는 이방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놓고 겪는 일들을 다룬 단편 문학집이었는데, 우리의 첫 만남의 의미와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가히 독서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사람과 책에 대해 대화하는 것이 특별할까 싶지만, 그가 요구르트 판매원임을 생각하면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된다. 요구르트 판매원인 그는 한 달 수입이 얼마냐?라는 무례한 질문을 고객으로부터 받아야 했고, 사업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문제점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가 일을 못하게 하려는 사측의 압박을 견뎌내야 했다. 12년간 길에서 서서 더위와 추위를 견뎌야 하는 자신을 향한 연민의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신문을 통해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고, 남성,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기준을 삼게 되었다. 내가 그를 눈여겨본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신문을 끊은 이후로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만 몰두하면서, 특히 고전들을 통해 지식과 논리를 갖추려고 노력하지만, 뼈대 없이 덕지덕지 갖다 붙이는 모양새가 될까 봐 두렵다고 말하는 그를 어찌 ‘요구르트 아줌마’의 유니폼 안에 가둘 수 있을까?
이 책에도 로마 사회의 편협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갈등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난민 가족이 어렵게 임대주택을 얻었지만 이웃의 폭압에 못 견뎌 결국 가족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자신은 부랑자가 된 사람, 불현듯 찾아온 ‘바람’에 남편과 아내의 자리가 흔들리고, 돌처럼 눌렀던 결혼제도를 들추고 돌 밑에서 살던 생물이 모습을 드러내듯 자신의 욕망에 솔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로마 시내의 밤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모기들처럼 거추장스럽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청소년들을 부러워하는 다른 대륙 출신의 여자아이, 갑자기 죽은 남편과 자기 삶을 찾아 떠난 쌍둥이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사는 한 여인이, 아들들이 다녔던 학교에서 잠시 보모역할을 하는 기회를 통해, 가족과 함께 했던 아른한 젊은 날의 추억을 되새겨보고 싶었지만, 다른 대륙 출신의 자신을 멸시하는 아이들이 보낸 쪽지를 눈물로 삼키며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삶 등, 많은 인간의 표상이 나온다.
작가 자신 역시 벵골인인 부모님을 두었고, 미국에서 태어나 작가로 성공했으나, 이탈리아어를 스스로 선택하여 변신의 불확신과 다양성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 자기 작품 활동을 해가는 사람이다. 이 작가의 에세이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한계가 있는 조건을 더 좋아한다. 무지가 어떤 식으로든 내게 필요하다는 걸 안다.
- 자신의 언어와 떨어져 살면 자신은 텅 비어 버린 듯한데 몸은 무겁게 느껴진다. 다른 고도에서 다른 종류의 공기를 호흡하는 것 같다. 늘 차이를 인식하게 된다.
- 나는 이 빈 공간에서, 이런 불확실에서 왔다. 빈 공간이 내 원천이요, 운명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이 빈 공간에서, 이 모든 불확실에서 창조적 충동이 나왔다. 액자를 채우고자 하는 충동이 말이다.
- 변신의 메커니즘은 절대 변화하지 않는 삶의 유일한 요소일지 모른다. 모든 개인, 나라, 역사의 시대 우주 만물의 과정은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격렬한 변화의 과정일 따름이다. 변화가 없다면 우린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가 변화하는 전이의 순간들이 우리의 척추를 만든다. 우리가 기억하고자 한 순간순간들은 살아남거나 사라진다. 변화가 우리의 존재에 뼈대를 만든다. 나머지는 대개 망각된다.
그래서 그는 로마와 미국을 건너 다니며 살고 활동한다. 퓰리처상 등을 받은 성공한 작가이지만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통해 새롭게 인간과 언어의 본질을 탐색하려는 시도에 우리는 매우 놀라워했다. 하지만 유목민적인 삶을 통한 작가의 변신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우리는 말했다. 사람은 동물이지만 대체로는 식물적인 삶을 산다. 그는 한결같이 지하철역 근처 아파트 초입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나는 33년 만에야 직장에서 벗어났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편협한 인식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그 편협함에 저항하려는 용기는 더욱 빛난다.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는 동료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중받고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진보당, 정의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번번이 정당의 패거리 정서에 한계를 느끼며 정치적인 활동을 그만두는 경험에 머물러야 했지만 말이다.
그는 세계와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신문과 책을, 그야말로 세파 속에서 놓지 않았고, 나는 늘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인생의 마디마디마다 선택했고, 집중해 왔다. 그 밀도는 매우 부족했지만, 어쨌든 그것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퇴직 이후 ‘사회적 지위 없음’에도 내 생활에 잘 안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격의 없음’이 내가 쌓은 세상의 경계를 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 천착하는 이유가 콤플렉스 때문인지 의문하며, 책을 놓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라 예감하기도 하는 그는 어떤 사회적 시선으로도 가둘 수 없는 자유인이고 자연인이다. 그리고 감히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만났다고 생각하고 싶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걱정하는 나에게, 쩡~한 날씨는 집중도를 더 높여 준다고 말하는 그는 도달할 수 없는 소실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