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중국 철학사 상, 하권

풍우란 저, 박성규 역, 2023년 22쇄, 까치책방

by 노각

공자 이전 시대부터 캉 유웨이의 변법파에 이르는 약 2500년간의 중국 사상을 정리한 이 책을 근 10개월에 걸쳐서 읽었다. 다 읽은 것도 아니었다. 상수학과 불학은 너무 어려워서 뛰어넘기도 했다. 음양오행설에 대해선 초보적인 정도의 이해는 있었지만, 그것을 象과 數로 설명한 도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남아있는 분량을 생각하니 조급함 때문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평소에도 ‘空’ 개념에 대해 이해가 쉽지 않았는 데다, 불학에 관한 저자의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서 몹시 어려웠다. 읽어도 읽어도 제자리걸음이었는데, 저자 자신도 불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서 글을 썼다는 고백을 읽고 조금 위안을 받았다.


동양의 고전이 된 사상을 다룬 이 책 자체가 이미 고전이 되었다. 저자 풍우란은 미국 유학을 하고 돌아온 후, 서양철학을 중국에 소개하려고 했으나, 여건상 1927년부터 중국철학사를 강의해야 했는데, 그 결과 1931년에 이 책을 출판하였고, 중국철학사를 이해하려는 동서양인이라면 모두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되었다. 중국에 등장한 그 많은 사상가들과 관련된 책과, 후대의 주석을 다 검토하고, 연구자들의 견해까지 비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을까? 놀랍기만 하다. 역자인 박성규 님도 대단하다. 풍우란이 90세에 완성한 『중국철학사신편』과 이 책을 비교하여 달라진 부분을 주석으로 다 제시하였다. 연구자로서 얼마나 꼼꼼하고 치밀한 태도로 이 책의 번역작업을 했는지 알게 한다.


풍우란은 중국철학사를 자학(子學)시대와 경학(經學)시대로 구분했다. 저자는 자학시대에 대해, “춘추전국시기로 백가쟁명의 시기로서, 각 철학자와 각 학파는 각자의 견해를 마음껏 발표하여 평등한 자격으로 다른 철학자와 상호 논변했으니, 이른바 ‘一尊(獨尊)’은 승인되지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 시기는 중국역사상 사상과 언론이 자유로워 학술이 최고 창성한 시대였다”고 설명했다. 또 경학시대에 대해서는 “이미 유가가 일존으로 확정되고 유가의 전적이 ‘경’으로 변했다. 이것은 모든 일반 백성의 사상에 대해서 한계를 세우고 기준을 수립하고 온갖 격식을 건립한 것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의 사상은 모두 ‘경’의 범위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경학시대는 진한 시대부터 청말에 이르는 약 2000년의 시간에 해당된다.

자학시대의 사상가들, 소위 제자백가들의 사상은 모두 경탄스러웠다. 숙연한 마음으로 공자 편을 마치면, 곧 묵자에게 감동받는다. 맹자의 엄정함에 허리를 곧추세우면 노자와 장자로 호탕해진다. 순자의 현실론에 안정감을 얻으면『주역』의 우주론에 어리둥절해지는 식이다. 풍우란은 ‘경학’과 ‘자학’을 대비하여 “경학의 특징은 경직화와 정체성에 있고, 자학의 특징은 새것을 표방하고 상이한 대안을 모색하는 활발한 생동성에 있다”고 했는데, 생동성이라는 말이 공감된다.


자학시대의 사상가들은 조금은 익숙한 편이었지만, 경학시대의 사상가들은 낯설었는데, 그 와중에 왕충이 당시 신비적인 학풍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매우 신선했고, 곽상의 <장자주>는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후한말에 들어와 위진 남북조 시대, 수당시대를 풍미한 불교가 중국 사상계에 끼친 엄청한 영향력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시 유학에 주목한 주렴계, 소강절, 장횡거를 거쳐 이정을 통해 정립된 이학과 심학이 주자에 의해 완성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 후 道學으로 발전해 가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을 고려말 사대부들이 받아들여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삼고, 도학적 기풍의 사회문화를 조성하려 했다. 국가 경영을 도학에 맞춰하려고 했다니, 참으로 진지한 시도 아니었겠는가? 조선의 성리학과 정치이념, 사림파들에 의해 발전한 주기, 주리론 사상에 대해 면밀히 살펴봐야 할 숙제가 생겼다. 그런 맥락에서 서학의 유입과 동학의 창도의 의미도 다시금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풍우란은 ‘서양이 저렇게 부강하건만 중국은 왜 이렇게 빈약한가?’하는 질문을 품고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중국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품은직 한 질문이지만, 인류의 정신문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요즘 세태라면 달리 질문해야 한다. ‘위대한 사상은 왜 인류를 구제하지 못했는가?, 이 시대 필요한 사상은 무엇인가? 사상의 역할을 무엇인가?’ 등.

서슴지 않고 AI에게 뇌를 의탁하는 요즘이지만, 틈틈이 이 책의 아무 데라도 펼쳐서 옛 성인의 경구를 확인하는 즐거움도 알았으면 좋겠다. 연구자의 입장에서의 비교, 비판과 상관없이 사람됨의 길에 대한 오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고, 바른 삶의 자세와 명징한 지혜는 나를 성찰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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